[중견 향한 공정위 칼끝④] "월급은 김치, 보너스는 와인" 사실로 드러나공정위, 총수일가 33억 이익챙겨“공정위 의견서 전달 받은 후 대응”
  • 중견기업집단에 비상이 걸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에 이어 중견기업에도 일감 몰아주기 관련 압박을 가하고 있어서다. 특히, 내부거래액이 상대적으로 많은 중견기업의 경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에 따라 뉴데일리경제는 주요 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상황과 대응방안 등을 총 5회에 걸쳐 다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태광그룹이 ‘일감 몰아주기 왕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호진 전 태광 회장 등 총수 일가가 내부거래로 사익을 편취했다는 의혹으로 총수 고발과 과징금 철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태광그룹 소속 19개 계열사가 휘슬링락CC(티시스)로부터 김치를 고가에 구매하고 메르뱅으로부터 합리적인 고려나 비교 없이 대규모로 와인을 구매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호진 전 회장과 김기유 그룹 경영기획실장 등을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과징금은 21억8000만원이다.

    휘슬링락CC는 지난 2013년 5월 태광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티시스에 합병돼 사업부로 편입됐다. 티시스는 편입된 휘슬링락CC에 김치를 제조해 계열사에 고가로 판매하기로 정했다. 휘슬링락CC는 2014년 4월부터 강원도 홍천군 소재 영농조합에 위탁해 김치를 대량생산했다.

    태광 계열사들은 이 김치를 회사비용으로 구매해 임직원에게 ‘급여’ 명목으로 지급했다. 이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공정위가 현장조사에 나선 2016년 9월 전까지 태광 계열사가 휘슬링락CC로부터 구매한 김치는 총 512만톤이다. 거래금액으로 따지면 95억5000만원 규모다.

    와인 소매 유통사업을 영위하는 메르뱅도 내부거래의 온상으로 지목됐다. 메르뱅 역시 티시스로 마찬가지로 이호진 전 회장 등 총수일가가 100%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태광의 경영을 사실상 총괄하는 그룹 경영기획실은 거래처 등에 선물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시 메르뱅 와인을 적극 활용하도록 권장했다. 또 2014년 8월에는 임직원 명절선물로 이 와인을 지급할 것을 계열사에 지시하기도 했다.

    계열사들은 경영기획실의 지침에 따라 복리후생비 등 회사비용으로 메르뱅 와인을 구매해 임직원에 지급했다. 2016년 9월 공정위 현장조사가 실시되기 전까지 약 2년간 태광 계열사들이 메르뱅으로부터 구매한 와인값은 총 46억원이다.

    공정위는 태광 소속 계열사가 2년여간 휘슬링락CC 김치와 메르뱅 와인을 통해 총수 일가에 제공한 이익 규모가 최소 33억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특히 김치 고가매입으로 발생한 이익은 25억5000만원으로, 대부분 이호진 전 회장 등 총수 일가에 배당 등으로 지급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총수 일가에 대한 부당이익 제공으로 지배력 강화와 편법적 경영권 승계 등 경제력 집중 우려현상이 나타났다며, 과징금과 함께 이호진 전 회장을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이번 건은 기업집단 내 계열사들이 상당한 규모의 거래로 총수 일가에 부당이익을 제공한 행위에 대해 최초로 제재한 사례”라며 “태광 외에도 대기업집단의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위반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태광 측은 공정위로부터 아직 관련 의견서 등이 오지 않았다며, 의견서를 받은 후 대응방식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태광그룹의 자산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9조3000억원이다. 태광산업 등 23개 계열사가 소속돼있다. 이 중 김치와 와인 구매 등에 동원된 계열사는 총 19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