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통한 대체제 모색 나섰다지만…일본의 추가 규제 가능성에 업계 바짝 긴장공정 특성상 소재 한가지만 빠져도 '올스톱'웨이퍼, 블랭크마스크 등 수급 문제 발생 우려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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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내 반도체업체들이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가장 먼저 언급된 '소재 국산화'는 당장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중국이나 러시아 소재업체들을 중심으로 대체제를 구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문제는 산적해있다.

    당장 수입이 어려워진 소재의 대체제를 확보해도 이후 공정 중 한 부분에서라도 소재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완제품 생산에는 또 다시 차질이 불가피하다. 더구나 일본이 웨이퍼나 블랭크마스크 등 추가적인 소재 수출길을 막을 여지가 남아 있는 만큼 수급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까지 긴장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일본 정부가 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의 수출을 규제함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한 활로를 다각도로 찾고 있다. 지난 4일을 기점으로 일본은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감광제 포토리지스트, 반도체 세정 에칭가스 등 3가지에 대해 수출 규제를 적용 중이다.

    이번 사태가 불거짐과 동시에 정부와 정치권, 학계에선 그동안 등한시 했던 '반도체 소재 국산화'를 가장 먼저 거론했다.

    소재에 따라 최대 90% 넘는 일본 의존도를 나타냈던 과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국산 소재시장을 육성해야 한다는 반성이 쏟아졌다. 국가 차원에서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당장 반도체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산업 현장에서는 시일이 얼마 걸릴지 모르는 소재 국산화에 목을 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본의 이번 규제가 시작됨과 동시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으로 떠나 직접 현지 거래선과 정재계 인사들을 만난 것도 결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업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평가된다.

    뒤이어 외신에서는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이 소재 '탈(脫)일본'을 앞당기기 위해 중국이나 대만, 러시아 등의 소재업체를 발굴해 대안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상하이증권보 인터넷판은 지난 16일 산둥성에 있는 화학사 '빈화그룹'이 한국의 반도체 회사의 불화수소 주문을 받았다고 전하는 한편 러시아 측에서도 한국업체들이 반도체 제조용 고순도 불화수소 공급을 문의했다고 알려졌다. 일본 언론들도 앞다퉈 한국 반도체 회사들이 일본 외의 다른 소재 공급선을 탐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중국이나 러시아산 소재가 대체제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이마저도 반도체 식각에 쓰이는 에칭가스에만 한정돼 예전처럼 다시 반도체 전 공정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안심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에칭가스에 대한 일본 의존도는 40%대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고 차세대 반도체 생산공정의 핵심인 포토리지스트의 경우 90% 넘는 일본 의존도를 나타내고 있지만 대체제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일본이 이번 수출 규제 조치에서 강도를 높여 더 많은 반도체 소재 품목에 규제를 가할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일본이 추가적으로 수출 규제에 나설 수 있는 반도체 관련 품목으로 집적회로(IC)와 노광장비,화학기상증착기(CVD), 이온주입기, 웨이퍼, 블랭크 마스크 등을 꼽고 있다. 전체 공정으로 봤을 때 어느 한 단계에서라도 소재가 공급되지 않으면 전체 생산라인 가동을 멈출 수 밖에 없는 게 반도체산업의 현실이다.

    물론 일본의 1차 수출 규제 대상에 포함된 포토리지스트와 에칭가스에 비하면 이후 공정에서 주로 쓰이는 노광장비, 이온주입, 화학기상증착 등의 대체제를 찾는 일은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다는 분석이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추가 규제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들은 이미 규제 대상인 포토리지스트와 에칭가스 대비 파괴력이 떨어진다"며 "IC와 노광장비의 경우 이미 일본업체의 경쟁력이 크게 낮아져있고 장비업체들도 과거 대비 일본업체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다만 도 연구원은 반도체 노광공정의 핵심인 포토마스크의 원재료가 되는 블랭크마스크와 웨이퍼 등이 추가로 규제 명단에 오르는 상황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웨이퍼의 경우 반도체 공정 초반부터 가장 많이 쓰이는 원료 중 하나로 일본이 전세계 60%를 점하고 있고 블랭크마스크는 삼성이 차세대 반도체 생산공정으로 꼽는 극자외선(EUV)용을 일본이 독점 생산하고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도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블랭크마스크의 경우 일본의 '호야' 같은 회사의 제품 품질이 매우 뛰어난데 삼성전자 내 호야 제품 비중이 60%에 달하는 수준"이라며 "국내에도 이를 생산하는 업체는 있지만 글로벌 업체 대비 기술력이 다소 부족하다"고 했다.

    이어 "웨이퍼도 일본 섬코, 신에츠의 기술력이 가장 뛰어나고 국내 반도체업체들이 이들 제품을 가장 선호해 마찬가지인 상황"이라며 "이들 품목에 추가 규제가 가해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