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평가 관리 부담 늘어 산업발전 소홀환경단체 반발로 투자 무산 및 공장 문 닫기도환경부 인력 3년 사이 25% 증가… "규제 개선 점검 필요"
  • 국내의 엄격한 환경규제도 기업들이 부품소재 개발을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화학물질 평가 관리로 민간기업의 부담은 늘다보니 산업발전에 소홀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관련 규제가 제각각인데다 관리 부처도 달라 국내 기업들 등골만 휘게 한다는 지적이다. 

    핵심 소재 개발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규제가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다. 

    화평법은 신규화학물질 또는 연간 1t 이상 제조·수입되는 기존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심사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계기로 화학제품에 대한 관리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지난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화관법은 화학물질의 체계적인 관리를 목적으로 유해화학물질의 취급 기준을 강화하기 위한 법률로 전신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다. 화관법에서는 유독물질, 허가제한 금지물질, 사고대비물질 등을 유해화학물질로 규정 관리한다. 

    문제는 이들 법률이 EU(유럽연합) 환경 규제 수준만큼 강력하다는 점이다. 일본과 미국의 경우 화학물질 신고대상을 신규 화학물질로 제한한 반면 EU와 우리나라는 신규 및 기존 물질에 대해 모두 적용하고 있다. 

    일본 화관법은 562종을 관리하지만 한국 화관법은 1940종 이상을 관리하는 등 관리대상에서 약 3.5배 차이가 난다. 오히려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조차 한국의 규제를 두고 EU보다 과도하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했다. 

    과도한 화학물질 안전규제는 국내 기업들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부품소재산업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 2012년 구미에서 발생한 불화수소 유출사고로 생산공장은 문을 닫았고 글로벌 석유화학기업 멕시켐이 3000억원을 투자해 연간 13만t 규모의 불화수소 생산공장을 짓기로 여수광양항만공사와 투자유치협약도 환경단체의 반발로 무산케 했다.

    또한 지난 2013년 삼성협력업체에서 불화수소 누출로 사고가 발생하자 정부는 화학물질관리법의 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며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를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으로 높였다. 

    중소기업의 경우 제품 수입을 중단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영업이익을 훨씬 웃도는 신규물질 등록 비용 탓에 수입을 포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와 함께 각기 다른 규제에 관리 부처도 달라 중복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화학물질 안전 규제는 화평법과 화관법 외에도 산안법에서도 관리되고 있는데 물질 등록은 법률마다 별도로, 관리 체계는 중복돼 비효율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가 다른 경우는 물론, 부처 내에서도 협조가 원만히 이뤄지지 못해 국내 기업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규제의 주무부처가 환경부인데 비해 일본은 경제산업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도 제도 개선을 목적으로 약 1만40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규제 설계 및 집행에 있어 기업의 필요와 애로사항을 청취 및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화평법과 화관법에서는 기업에게 평가 책임을 부과하고 있어 비슷한 평가를 반복하고 있으며 민간은 지적재산권 문제로 EU의 평가결과를 활용할 수 없어 국력이 낭비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유럽식 환경규제 시행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일부 보완하는 방식으로 전개해야 기업들의 지속되는 혼란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특히 유럽의 환경규제는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제도가 아니고 일본은 물론 미국도 유럽 수준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는 만큼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곽노성 한양대 과학정책학과 특임교수는 "화학물질 평가 규제 강도가 일본, 미국, EU, 한국 순으로 일본과 한국이 극명히 대비된다"며 "전문 인력의 질적 역량은 물론 수적 현격한 차이로 인해 EU방식은 한국에서 혼란만 초래할 뿐 실행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교수는 "환경부 인력이 3년 사이에 25% 증원되는 등 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며 "최근 주민 반대로 용인의 데이터센터 건립이 무산되는 등 과학기술계와 산업계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