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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저녹스(콘덴싱) 보일러 보급 사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콘덴싱 제품의 설치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업을 밀어붙여, 자칫 실효성 없는 ‘탁상행정’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부는 지난달 초 콘덴싱 보일러 사업 추가경정 예산으로 336억원을 확보했다. 이는 올해 본예산 24억원과 비교해 14배 많은 규모다. 내년 4월 콘덴싱 의무화법 시행을 앞두고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린 것으로 보인다.
추경 확보로 올해 전체 사업 예산은 36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보일러 30만 대를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정부는 각 지자체와 분담해 제품 구입자에게 대당 2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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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덴싱 보일러는 한번 쓴 폐가스를 재사용한다는 점에서 열효율이 높고 친환경적이다. 그러나 폐가스가 열교환기를 거칠 때 응축수가 배출돼, 별도의 배수구 설치가 필요하다. 요즘 신축주택과 아파트의 경우 콘덴싱 보일러 설치를 고려해 지어진다.
문제는 노후 주택이다. 가스보일러를 사용하던 노후 주택의 경우 구조상 배수구 설치가 어렵다. 배출구 없이 제품을 설치하는 경우 보일러 아래 물받이를 설치해 시간마다 응축수를 비워내야 하는 불편이 생긴다. 사실상 설치가 불가능하다.
설치환경 제약으로 최근 몇 년간 지자체 보급 사업은 번번이 목표에 미달했다. 지난해 정부는 서울·경기·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1만2360대를 보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보급량은 1만842대로, 당초 목표의 88%에 불과했다.
올 상반기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올해 본예산을 기준으로 설정한 보급 목표는 약 3만 대였다. 이중 보조금 지급이 완료된 건은 약 1만800대로, 전체 목표치의 36%에 불과하다. 추경 확보로 올해 말까지 27만대의 보일러를 추가 지원할 수 있게 됐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보일러 업계 관계자는 “콘덴싱 보급 예산 확대로 제품판매 확대 등 업계의 기대가 크지만, 실현 가능성 측면에선 우려가 만만치 않다”면서 “지난해 1만여 대, 올 상반기 목표 물량 3만 대도 다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목표치를 30만대로 늘려 당황스럽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미세먼지 절감인 만큼, 환경 인증을 획득한 일반 보일러로의 사업 범위 확대 등 유연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현재 정부는 지원 대상을 콘덴싱 제품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최근 업계는 일반 보일러도 질소 산화물 배출량을 낮춰 출시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당장엔 제품을 설치할 수 있는 가구가 제한적인 만큼, 콘덴싱 수준의 친환경 기능을 갖춘 제품으로의 지원 확대 등 대안이 필요하다”면서 “어쨌든 새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미세먼지 절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콘덴싱 보일러 의무설치 내용을 담은 '대기관리권역 특별법'은 내년 4월 시행된다. 시행에 앞서 오는 10월엔 입법 예고를 거친다. 환경부는 관련 절차에서 보일러 제조사, 지자체, 소비자 등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보일러 수요가 증가하는 하반기엔 보조금 신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며, 부처와 지자체 차원에서 정책 홍보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콘덴싱 추경 관련 업계 등의 우려를 알고 있어 10월 입법예고를 거치며 관련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