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협상 타결 기대… 후속 중재 움직임 없어항공전문가 "정식 회의체 아냐…강제력 기대도 어려워"ICAO내 입김도 달라… 中·日 1그룹-韓 3그룹일본 매스컴 무관심… "거론 필요성 못 느끼는 듯"
  • ▲ 제주남단 공역 및 항공회랑 도면.ⓒ국토부
    ▲ 제주남단 공역 및 항공회랑 도면.ⓒ국토부
    한국이 책임지는 공역임에도 항공 관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제주도 남단의 항공회랑(특정 고도로만 비행할 수 있게 설정된 일종의 공중 통로) 정상화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중재에 기대는 형편이지만 ICAO의 후속 중재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어서다. 한·중·일 3국의 ICAO 내 지형도를 봤을때 중국과 일본의 목소리가 우리나라보다 크다는 것도 장애요인으로 꼽힌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8일 낸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27일(현지 시각)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ICAO 이사회에서 제주 남단 항공회랑 관제권과 관련해 한·중·일 당사국간 협상 경과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ICAO 사무국은 항공안전을 위해 그동안의 논의를 바탕으로 △한·일 관제 중첩구간 일원화 △중·일 노선 항로 복선화 △한·중 관제 직통선 설치 등의 개선방안을 내년 도쿄올림픽 이전까지 추진하는 기본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이 된 제주 남단 항공회랑은 이어도에서 남쪽으로 50㎞쯤 떨어진 공해 상공에 설정된 비행 구역이다. 이곳은 우리가 관제권 등을 행사하는 인천비행정보구역(FIR·항행안전관리 책임공역)내에 있음에도 동경 125도를 기준으로 왼쪽은 중국, 오른쪽은 일본이 각각 관제권을 갖고 있다. 한·중 외교 수립 이전인 1983년 1월 ICAO 중재로 중~일 직항로가 항공회랑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항공회랑 설정 당시 10여대에 불과했던 비행기 운항 편수는 지금은 하루평균 880대가 다니는 비행안전 주의지역이 됐다. 우리가 관제를 보는 동남아행 항공로와 교차해 안전에 취약하다는게 국토부 설명이다.

    국토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제주 남단 항공회랑의 관제권을 정상화하기 위해 ICAO, 중·일과 개선방안을 협의해왔다. 올해도 3국이 1·3·7월 3차례 만났다. 

    하지만 일본은 현재의 관제 방식에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고 중국도 푸둥공항이 항공회랑과 가까워 새 항로 개설에 적극성을 띠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 ▲ 한중일 회의.ⓒ연합뉴스
    ▲ 한중일 회의.ⓒ연합뉴스
    국토부는 항공안전을 내세워 ICAO 중재를 통해 근본대책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달 이사회에서 ICAO 사무국이 (한국측 주장을 받아들여) 큰틀에서 원칙을 던져준 것으로 (우리로선) 큰 힘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당사국간 후속 협의를 통해 조속히 협상이 타결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믿었던(?) ICAO의 후속 중재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이사회 당시) 연내 협상을 타결할 수 있도록  ICAO에 (중재를) 제안했다"면서 "아직 협상 일정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건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국토부 관계자는 "연내 협상 타결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면서 "3국이 공식적으로 합의하는게 먼저다. 빨라야 내년 상반기 늦어지면 7~8월까지 밀릴 수 있다"고 부연했다.

    ICAO의 이렇다 할 후속 중재가 없지만 국토부는 아직 협상을 낙관하는 분위기다. 최악에는 ICAO가 중·일 양국을 항공안전우려국으로 지정해 제재에 나설 수 있으므로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일본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거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항공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항공전문가는 "ICAO는 유엔산하 전문기구로 이번 (제주 남단 항공회랑) 협상은 정식 회의체가 아니고 강제성도 없다"면서 "이해당사국중 한 나라라도 견해가 다르면 협상은 판이 깨질 것"이라고 전했다.

    국토부가 언급한 항공안전우려국 지정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항공안전우려국 지정 현황을 묻는 말에 "북한이나 남태평양 소속의 이름도 생소한 몇 나라로 안다"면서 "정확한 내용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CAO내 중국과 일본의 지위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일 양국은 ICAO 파트Ⅰ그룹(항공운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국가) 이사국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올해 이사국 7연임에 성공했지만 파트Ⅲ그룹(주요 지역대표)에 포함됐다. 한국은 중국, 일본과 달리 ICAO 이사국내 지위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항공전문가는 "ICAO 내에서 우리나라보다 중국과 일본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ICAO내에서 우리와 유사한 항공로 갈등 사례를 보면 길게는 30년 동안 협상을 벌인 경우도 있었다"면서 "그동안 사례를 보면 당사국간 이해가 상충할 경우 협상이 장기화했었다"고 귀띔했다.

    일본은 제주 남단 항공회랑 이슈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본내 최대 검색엔진인 야후재팬에서 제주 남단 항공회랑과 관련한 뉴스를 찾아보면 일본 매스컴은 이 사안을 거의 취급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 정통한 한 국제전문가는 "(야후재팬에서) 국내 언론사의 일본어판 기사는 찾기 쉬워도 일본 언론사의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무관심보다는 거론할 필요성이나 기사를 쓸 만큼의 분쟁거리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 여객기.ⓒ연합뉴스
    ▲ 여객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