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전 중·일 직항로 개설… 우리 책임공역인데 관제권은 중·일에국토부 "항로 신설해 관제권 되찾아야"… 중·일 "문제없다" 유지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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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남단에 설정된 항공회랑(특정 고도로만 비행이 가능한 구역)을 두고 항공안전 문제가 대두된 가운데 한·중·일 3국이 관제권을 놓고 이해관계가 얽힌 상태다. 우리나라는 안방의 관제권을 찾아온다는 명분이지만, 중국과 일본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을 공산이 크다.
당분간 제주남단 항공회랑에서의 항공안전 불안감이 지속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14일 이어도에서 남쪽으로 50㎞쯤 떨어진 공해 상공에 설정된 일명 '제주남단 항공회랑'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 일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30일 제주공항을 이륙해 중국 푸동공항(상하이)으로 향하던 중국 길상항공 비행기가 중국 상하이~일본 아카라항로(A593)에서 고도를 낮춰 접근하는 중국 동방항공 여객기와 충돌할 뻔했다. 아카라항로는 제주 남단에 설정된 항공회랑을 지나는 하늘길로, 항공회랑에서는 중간에 고도를 올리거나 내릴 수 없다. 국토부 설명으로는 당시 동방항공 비행기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항로 위에 뇌우(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발생하자 이를 피하려고 고도를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7월에도 이 항로에서 비슷한 위험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의 페덱스 항공기가 임의로 고도를 900m쯤 올리는 바람에 당시 동남아에서 출발해 제주도 방면으로 날아오던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소속 여객기 2대와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다행히 우리 측 관제에서 국내 LCC 항공기에 긴급 선회를 지시해 위기를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은 해당 항공회랑 설정 구역이 우리 비행정보구역(FIR·항행안전관리 책임공역) 내에 있음에도 관제권을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과 일본이 행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관제 레이더가 아카라항로를 지나는 비행기의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해도 직접 무선연락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정 급하면 일본이나 중국 측 종합교통관제소(ACC)에 연락해 확인을 부탁해야 한다. -
중~일 직항로가 항공회랑을 통해 제주 남단 공해 상공을 지나게 설정되면서 그동안 동경 125도를 기준으로 왼쪽은 중국, 오른쪽은 일본이 각각 관제를 맡아왔다. 문제는 일본이 관제를 맡는 구역은 우리나라가 관제업무를 보는 동남아행 항로와 교차한다는 점이다. 권용복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항공회랑 설정 당시만 해도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비행기가 10여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중~일 간 345대, 한~중 간 178대, 한~동남아 간 352대 등 하루평균 880대의 비행기가 다닌다"면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등 국제사회에서 이 구간은 비행안전 주의를 요구하는 핫스폿(관심 지역)으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
그러나 3국의 이해가 달라 협의가 녹록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일본은 현재의 관제방식에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견해다. 중국도 푸동공항이 항공회랑과 가까워 새 항로 개설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는 항공안전을 내세워 ICAO 중재로 근본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여러 정황상 제주도와 남해안 사이에 항로 신설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권 실장은 "현 ICAO 의장이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임기가 올해 말까지여서 그 안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다만 중국과 일본이 소극적이다"고 말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항공회랑 정상화 촉구에 답을 주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일단 협상을 오는 9월3일까지 유예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최근 한일 관계가 무역전쟁으로 최악의 상황이어서 불똥이 항공회랑 정상화 협의로 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도 ICAO 중재에 선뜻 응할지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항공회랑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으나 중국에서 사실상 반대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