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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에 기름을 부은 가운데 미국의 제재로 홍콩이 중계무역 허브 기능을 상실하면 우리나라의 수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9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내놓은 '홍콩보안법 관련 미·중 갈등과 우리 수출 영향' 분석자료에 따르면 홍콩은 중국, 미국, 베트남에 이어 우리나라의 4위 수출 대상국이다. 홍콩은 낮은 법인세와 안정적인 환율제도, 항만·공항 인프라 등으로 국제금융과 무역의 허브로서 입지를 굳혀왔다. 홍콩은 총수입 중 89%를 재수출하는 중계무역 거점이다. 총수입 중 절반은 중국 본토로 재수출된다.
우리나라도 홍콩을 중계무역 기지로 활용해왔다. 우리나라가 홍콩을 경유해 중국으로 수출하는 비중은 98.1%로, 대만 다음으로 높다. 홍콩에서 중국으로의 접근성이 좋고 부가가치세 환급 등 절세 혜택이 있어서다. 홍콩을 거쳐 제3국으로 재수출하는 비중도 적잖다.
무역연구원은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장기화하면 홍콩이 중계무역 허브 기능을 상실할 것으로 우려했다. 지난 28일 중국은 전국인민대회에서 홍콩보안법을 압도적인 찬성(찬성 2878표·반대 1표·기권 6표)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은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 금지, 홍콩 내 반정부 활동 감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홍콩보안법이 제정되면 홍콩에 주었던 특별대우를 회수하겠다는 태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지시각으로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홍콩보안법 통과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을 내놓을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홍콩보안법 제정 강행 시 고강도 '응징'을 예고한 상태다. 이번 대응책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전략의 하나로 밀어붙일 공산이 커 허풍선에 그치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부과와 비자 제한, 그 외 경제적 징벌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1992년 홍콩정책법을 만들어 홍콩을 비자 발급과 투자 유치, 법 집행 등에서 중국 본토와 달리 특별대우해왔다. 이는 홍콩이 아시아 대표 금융·물류 허브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무역연구원은 설명했다. 미국은 홍콩이 자치권을 행사한다는 전제로 홍콩에 특별지위를 부여했다. 홍콩은 1984년 영국과 중국이 맺은 홍콩반환협정에 따라 홍콩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7월 이후 50년간 일국양제 원칙을 토대로 자치권을 인정받아 왔다.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면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품목은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최대 25%의 추가 관세를 물어야 한다. 현재 대미 관세는 1.6% 수준이다. 중계무역 기지로서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외국계 자본이 대거 이탈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게 된다. -
문제는 홍콩을 우회해 제3국으로 수출하는 한국의 수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특히 대기업보다 중소·중견 수출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체 항공편 확보 등으로 물류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는 화장품, 농수산식품 등은 중국으로 직수출할 경우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통관·검역 절차를 거쳐야 해 수출에 차질이 예상된다.
다행히 한국의 효자수출 품목인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무관세여서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역연구원은 홍콩으로 우회하는 대미 수출도 당장은 영향이 제한적일 거로 내다봤다. 한국이 홍콩으로 수출하는 물량 중 미국으로 재수출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1.7%에 그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의 홍콩 제재가 장기화하면 홍콩을 중계무역기지로 활용하기는 어려워진다는 분석이다.
설상가상 코로나19 범유행에 따른 글로벌 교역마저 급속히 위축되는 상황이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수출의 애로가 가중되는 셈이다.
일각에선 홍콩보안법이 한국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홍콩을 거치는 중국의 대미 수출이 차질을 빚으면 우리 기업의 대미수출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견해다. △석유화학 △가전 △의료·정밀 △광학기기 △철강 △플라스틱 등이 중국보다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품목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