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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쓰오일. ⓒ연합뉴스
고배당주로 통하는 에쓰오일이 20년 만에 중간배당을 포기했다. 1분기 사상 최대 영업손실(1조72억원)을 기록한데다 2분기도 큰 폭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악화된 영업실적은 재무구조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대산 특화산업단지 조성도 손을 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6월 말까지 중간배당을 지급하는데 필요한 절차인 주주명부폐쇄를 하지 않았다. 이는 매년 7~8월 지급하던 중간배당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에쓰오일은 정유업계 중간배당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GS칼텍스는 중간배당 없이 기말배당만 실시하고 있으며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는 2017년 첫 중간배당을 실시했다. 게다가 고배당주다. 2016년 7219억원, 2017년 6870억원의 배당을 단행했다. 배당성향은 각각 59.8%, 55.1%에 달한다.
하지만 2018년부터 실적 부진에 따른 자금 부담이 늘어나면서 배당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실적이 대폭 줄어든 2018년에는 874억원으로 감소했고, 배당성향도 33.8% 수준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결산배당은 보통주 1주당 200원(우선주 225원), 배당성향 35.7%를 기록했다. 30% 이상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은 지켰지만, 순이익(654억원)이 70% 이상 급감하면서 주당 배당금도 2018년 750원에 비해 73.3% 줄어들었다.
예상치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사태와 산유국간 유가전쟁 여파로 1분기 사상 최대 분기 적자를 기록했으며 2분기 실적 전망도 비관적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장기화로 향후에도 적자를 만회하기 힘든 상황인 만큼 기말배당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증권사들의 실적 전망치를 종합해보면 2분기 매출액은 8조5070억원,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804억원으로 추정됐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876억원, 연간 영업이익은 -5276억원으로 추산됐다.
송미경 나이스신용평가 실장은 "2분기 이후 주요국의 점진적 경제활동 재개, 유가의 일부 반등, 사우디아라비아 OSP(공식판매가격) 인하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점차 정유 부문 실적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1분기 대규모 영업손실 규모, 전반적인 수요 위축, 낮은 정제마진 등을 감안하면 연간 기준 흑자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업현금흐름 부진에 앞선 석유화학 투자 등으로 재무안정성도 크게 저하된 상태다.
분기보고서 분석 결과 1분기 에쓰오일의 부채는 2015년 5조3735억원 이후 지속 증가하면서 2배 가까이 증가(99.7%)한 10조7340억원을 기록했다. 부채비율은 104%에서 192%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차입금도 3조2422억원에서 7조8764억원으로 꾸준히 늘어(142%)나면서 차입금의존도 역시 66.0%에서 141%로 크게 높아졌다. 차입금 등 부채 증가에 따라 이자비용도 2015년 이후 최고인 460억원을 기록했다. 직전 5년 평균 이자비용은 절반이 채 안 되는 185억원이다.
뿐만 아니라 유동비율이 2016년 176%에서 올해 88.7%로 지속 감소한 가운데 단기차입금 비중도 2018년 33.0%에서 올해 47.3%로 확대됐다. 차입구조 단기화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도 우려된다.
권기혁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부진한 정제마진과 석유화학제품 스프레드 축소로 영업현금창출이 부진하면서 과중한 재무 부담이 지속됐다"며 "당분간 업황 부진으로 실적 저하 추이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현금창출력을 통한 단기적인 재무구조 개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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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UC&ODC(잔사유 고도화 및 올레핀 다운스트림 설비). ⓒ에쓰오일
상황이 이렇다보니 충남 서산시에 조성 예정이던 대산 첨단정밀화학 특화산단 조성사업에서도 발을 뺐다.
이 사업은 2023년 12월까지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일원 291만㎡ 부지에 정밀화학업종 중심의 산단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의 세부 추진계획에 반영됐으며 같은 해 9월 충남도, 서산시, 에쓰오일,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이 이 사업에 대해 상호협력을 강화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됐다.
에쓰오일이 앞서 매입한 대산2일반산단 토지 111만㎡를 롯데케미칼과 한화토탈에게 팔고, 에쓰오일은 그 대금으로 산단 맞은편 토지를 매입해 첨단화학단지를 완성하는 구조다. 이 사업은 여수, 울산 등과 함께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면서도 국가산단으로 지정되지 않은 대산 석유화학단지를 산단으로 재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대 10조원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지역의 기대감도 증폭됐다. 2017년 10월부터 13차에 걸쳐 실무협의회가 열릴 정도로 사업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그러나 에쓰오일이 3월 열린 14차 실무협의회에서 대산2 일반산단 사업을 포기하고 취득 토지를 매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무안정성이 계속해서 저하되면서 사업 추진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에쓰오일 측은 "2010년 부지 매입 후 최선을 다해 특화산단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지난해부터 RUC&ODC(잔사유 고도화 및 올레핀 다운스트림 설비) 프로젝트 투자금 회수 지연, 정제마진 급락,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경영환경이 급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산공단에 진행할 2단계 석유화학 프로젝트와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토지를 매각하는 고육지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에쓰오일은 토지대금과 그간의 금융비용을 포함해 약 1800억원에 토지를 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각에서 제기되는 2단계 석유화학 프로젝트 연기 및 포기 가능성과는 별개로 에쓰오일은 본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CEO는 "샤힌(Shaheen) 프로젝트로 아시아·태평양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될 것"이라며 "더 높은 경쟁력을 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에쓰오일은 대주주 아람코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4년까지 7조원을 투자하는 석유화학 2단계 프로젝트를 검토 중이다. 2015~2018년 RUC&ODC에 투입된 5조원을 넘어서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 투자다.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와 부생가스를 원료로 에틸렌 등 기타 석유화학 원재료를 생산하는 설비다. 연산 150만t의 에틸렌을 생산하는 스팀 크래커를 건설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는 아람코가 독자 개발한 TC2C(원유→석유화학물 전환) 기술도 적극 도입된다.
다만 프로젝트 완료시기는 2024년으로 정해졌으나, 시작 시기기 미확정인 상태다. 업계 일각에서는 침체된 업황과 과중한 재무구조 등으로 본 프로젝트의 지연 또는 포기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