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거래 압박'으로 느껴파기 시 사업 리스크 부담"끌려가듯 사게될 것… 항공업엔 정부 미운털 치명적"
  • 이스타항공 인수를 진행 중인 제주항공의 고민이 깊어졌다. 양 측이 셧다운, 구조조정, 체불임금 책임을 두고 폭로전을 벌이면서 거래 무산 전망 대두 됐지만 정부의 개입으로 상황이 모호하게 흐르고 있다.

    정부 중재 마저 외면할 경우 제주항공은 물론 모그룹인 애경까지 부정적인 여파가 미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일부터 뒤늦게 이스타 체불임금 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노조 면담을 통해 정확한 피해를 파악 중이며,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과도 접촉 중이다. 조만간 인수 예정자인 제주항공에도 협조를 구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주에는 국토교통부가 나섰다. 김현미 장관은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을 직접 만나 “거래를 계획대로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다. 인수 관련 지원도 약속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제주항공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감독기관인 국토부에 이어 노무 업무를 맡은 고용부까지 나선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동종 업체인 진에어가 이른바  ‘물컵 갑질’로 20개월간 국토부 제재를 받은 전례를 누구보다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 ▲ 8일 애경 본사 앞에서 인수 촉구 집회를 갖는 이스타 노조 ⓒ 연합뉴스
    ▲ 8일 애경 본사 앞에서 인수 촉구 집회를 갖는 이스타 노조 ⓒ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녹취록 공개 이후 제주항공이 거래 주도권을 잃었다고 평가한다. 그간 수면 아래 진행한 출구 전략이 방향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감독기관을 포함한 정부의 ‘거래 압박’도 여기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딜은 돼도 안돼도 부담이 크다. 제주항공은 승자의 저주를 넘어 ‘승자의 늪’에 빠진 상황”이라며 “정부 부처까지 나서면서 이번 딜은 여론과 정부에 떠밀려 성사하는 비(非)시장 요소적 거래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피할 수 없다면 현 상황을 기회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인수를 결정하는 대신 대형항공사에 준한 기간산업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대표 규제산업인 항공업을 운영하며 정부와 목소리를 달리하는 것은 크나큰 사업 리스크를 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간 제주항공은 사실상 딜 포기를 위한 출구전략을 실행해왔다. 코로나19로 업황이 급격히 나빠진데다, 이스타의 부실한 재무구조와 체불임금 등이 부담으로 작용해서다. 지난해 말 거래 초기 때만 해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였다.

    그러던 중 편법 증여 등 대주주 이상직 의원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의 ‘인수 포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얼마 후 제주 측은 “이스타가 거래 선행조건인 해외 자회사 지급보증을 해결하지 못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황은 다시 뒤바뀌었다. 최근 이스타 노조가 공개한 이석주 전 제주항공 대표와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의 통화 녹취파일 때문이다. 녹취록에서 이석주 당시 대표는 “현재는 셧다운(운항중단)이 맞다. 딜 클로징 후 가장 우선순위는 체불임금”이라고 말했다.

    이스타 측은 “인수를 전제로 셧다운을 지시해 회사를 어렵게 해놓고 이제와 말을 바꾼다”고 주장 중이다. 상황이 반전을 거듭하자 급기야 국토부와 고용부도 직접 사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