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구상·제안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EARC) 설립이 미국·일본·북한의 참여가 불투명해 반쪽짜리 협의체로 전락할 공산이 커졌다. 이런 가운데 국토교통부는 지정학적으로 끼어있는 북한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중국이 참여하면 여러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태도다. 중국의 경우 항만과 철도를 연계하는 복합운송에 관심이 많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EARC가 출범하더라도 중국 입맛대로 굴러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20일 국토부에 따르면 오는 10월로 계획했던 EARC 국제포럼이 연말께로 연기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가 2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며 재확산하고 있고 EARC 관련국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날로 격화하는 등 여건이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EARC는 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했다. 한국·북한·중국·러시아·몽골·일본 등 동북아시아 6개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철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평화기반 구축과 공동 번영을 위한 인프라 투자와 경제협력 사업을 벌이자는 구상이다.
하지만 미·중, 미·북, 한·일 관계가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데다 현재로선 갈등이 언제 풀릴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과 러시아, 몽골만 긍정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어 사실상 반쪽짜리 구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
비핵화 문제의 당사자이면서 지정학적으로 끼어있는 북한의 참여도 불투명하다. 국토부는 지난해 9월 국제포럼의 예비단계로 국제세미나를 열면서 통일부를 통해 북한에 초청장을 보냈지만, 북한은 참석하지 않았다. 앞선 6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장관회의에서 국토부 제2차관이 북한의 철도상을 직접 만나 구두로 참석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북한은 불참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EARC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부연했다.
-
그러나 국토부는 EARC에서 북한이 빠지더라도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몽골만 참여해도 관련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견해다. 국토부 관계자는 "꼭 북한이 아니어도 EARC에서 여러 사업을 할 수 있다"며 "철도는 협의의 매개체일 뿐이며 관련국과 주변 관광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협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특히 중국이 철도를 통한 육상운송뿐 아니라 해운과 결합한 복합운송에도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항만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 물품을 보낸 뒤 대륙철도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EARC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해운 루트를 이용하면 굳이 북한을 거치지 않고도 대륙철도와 연결할 수 있으므로 북한의 참여 여부에 목맬 필요가 없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동아시아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해 제안한 EARC가 결국 중국의 입맛대로 운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재주는 한국이 넘고 실리는 중국이 챙길 수 있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