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R&D 비용 1조 투입-생산능력 확충 등 공격적 투자시장 선점 경쟁 심화… 사업부-지분 매각, 자금 확보 나서기도
  • ▲ 전기차 배터리. ⓒLG화학
    ▲ 전기차 배터리. ⓒLG화학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시장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국내 전기차 배터리 3사의 부채가 1년새 10조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공장 신증설과 연구개발(R&D)에 힘을 실으면서다.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만큼 재무 부담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반기보고서 분석 결과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부채는 모두 52조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41조원에 비해 25.0% 증가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10조4206억원이 불어났다. LG화학이 5조5771억원, SK이노베이션 4조2041억원, 삼성SDI는 6392억원이 늘어났다.

    늘어난 부채 대부분은 외부 차입금이다. 같은 기간 3사의 차입금은 19조원에서 28조원으로 8조2716억원(41.4%) 늘어났다. 규모가 작지 않은 3사인 만큼 부채비율(112%)이나 차입금의존도(60.9%) 등 재무건전성 지표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두 지표 모두 최근 4년간 꾸준히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상반기 기준 부채비율은 △2017년 53.8%에서 △2018년 64.7% △2019년 84.1%를 기록했으며 같은 기간 차입금의존도는 ▲18.1% ▲23.9% ▲40.3%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은 대부분 배터리공장 증설과 차세대 제품 R&D에 투입되고 있다. 특히 R&D 비용은 올 상반기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보조금을 제외한 3사의 R&D 비용은 모두 1조793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9911억원에 비해 8.89% 늘었다. LG화학이 543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각각 4091억원과 1278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증가율만 보면 SK이노베이션이 두각을 보였다. 지난해 상반기 976억원을 투입했는데, 올 상반기에는 이보다 30.9% 더 늘렸다. 지난해 상반기와 큰 차이가 없었던 LG화학과 16.9% 늘린 삼성SDI에 비해 증가폭이 훨씬 컸다.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이 상위 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을 대거 투자한 영향"이라고 진단했다.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삼성SDI가 8.2%로 가장 앞섰다. LG화학은 4.0%, SK이노베이션은 0.7%에 그쳐 대조를 이뤘다.

    LG화학의 경우 석유화학사업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SK이노베이션 역시 여전히 정유사업이 주력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삼성SDI의 R&D투자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격적이라는 것이 업계 평가다.
  • ▲ 삼성SDI 천안사업장. ⓒ연합뉴스
    ▲ 삼성SDI 천안사업장. ⓒ연합뉴스
    3사는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충전 속도를 향상하는 등 신기술 개발과 함께 수율을 안정화하고 공급망을 추가로 확보하는 등 격차를 더 벌릴 계획이다. 또 경쟁 우위를 이어가고자 생산능력 증설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3사의 전기차 배터리시장 점유율은 총 34.5%로 지난해 상반기 15.6%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LG화학이 1위를 유지한 가운데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도 각각 4위와 6위를 기록하며 톱 10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세계 1위' LG화학은 폴란드 공장의 생산능력을 연초 30GWh에서 연말 60GWh로 확대하고 있으며 수율도 안정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GM과 손잡고 연간 생산량 30GWh를 웃도는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중국에서도 2023년까지 30GWh 이상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보하고자 증설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3조9000억원을 쏟아 부은데 이어 올해도 3조원 규모로 투자할 예정이다.

    삼성SDI도 내년 5세대(5Gen) 배터리를 내놓을 예정이며 헝가리와 중국 공장에서 증설이 진행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과 헝가리 공장을 건설하며 지나해 말 20GWh 수준에서 2023년 71GWh로 생산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업황 침체에 따라 경쟁적 생산능력 확대와 연구개발 집중이 부담이 되자 매각이나 상장을 통해 현금성 자산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상장을 내년 초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윤활유사업 부문인 SK루브리컨츠의 지분 매각에도 나섰다.

    현재까지 7조원의 자금이 투입됐는데, 목표치 달성을 위해서는 약 4조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 급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현금 창출의 큰 축이었던 정유사업의 경상이익까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LG화학도 사업 재편이 한창이다. 6월에는 중국 화학업체 샨샨(Shanshan)에 액정표시장치(LCD) 편광판사업을 1조3000억원에 매각했다. 앞서 2월에도 중국 업체에 LCD 감광재사업을 넘겼다. 또 LCD 유리기판 사업도 곧 철수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3사도 꾸준히 투자를 늘릴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투자금 마련을 위한 사업부 정리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 미국 조지아주 제1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 ⓒSK이노베이션
    ▲ 미국 조지아주 제1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 ⓒSK이노베이션
    실제 시장이 급성장하는 만큼 경쟁자도 빠르게 늘고 있어 이들 3사도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유수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배터리 생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글로벌 1위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는 다음달 22일로 예정된 배터리데이 행사에서 자체 개발 배터리 관련 발표를 할 예정이다.

    테슬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체 배터리셀 생산라인도 운영 중이다. 전기차 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직접 개발해 원가를 절감하고 공급을 안정화시킬 뿐만 아니라 배터리업체들과의 협상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글로벌 순수전기차시장의 28%를 차지하는 테슬라가 배터리를 자체 개발할 경우 업계 판도가 순식간에 뒤집어질 수 있다. 특히 테슬라가 CATL을 배터리 자체 개발을 위한 파트너로 삼았다는 점도 한국에는 위협이다. 테슬라는 중국 CATL과 함께 기존 배터리보다 사용연한이 5배 정도 긴 100만마일(약 160만㎞)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폭스바겐, BMW 등 다른 주요 완성차 업체들도 배터리 자체 조달을 준비하고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스웨덴 배터리업체 노스볼트(Northvolt)와 함께 16억달러(약 1조9000억원)을 들여 유럽 최대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짓고 있다. 폭스바겐은 아시아 물량을 줄이고 배터리 자체 조달을 늘려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BMW도 자체 배터리 기술 개발을 위해 지난 4년간 2억유로(약 2800억원)를 투자했으며 지난해 자사 전기차에 최적화된 배터리를 직접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22년 가동을 목표로 독일에 배터리셀을 생산하는 파일럿 공장도 짓는다.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한중일 3국의 배터리 산업에 대한 유럽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프랑스 대통령으로서 우리 전기차 배터리 100%를 아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을 정도다.

    유럽은 수년 전부터 자체 공급망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2017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주도로 유럽배터리연합을 출범시켰고, 프랑스와 독일은 지난해부터 4년간 최대 60억유로를 자국 배터리공장 1곳씩에 공동 투자하기로 했다.

    유럽 화학업체들도 잇따라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뛰어들고 있다. 소형배터리를 만들던 독일 배터리업체 바르타(Varta)는 전기차용 배터리사장에 진출하기로 하고 독일 정부 등으로부터 전기차용 배터리셀 연구개발을 위해 3억유로를 지원받기도 했다.

    영국 업체인 브리티시볼트는 2023년 양산을 목표로 영국 사우스웨일스 지역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내년 착공해 2023년께 연간 30GWh 규모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다. 영국 내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G화학과 글로벌 1위를 다투는 CATL도 위협적이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CATL은 최근 197억위안(약 3조3700억원)을 증자해 배터리공장 증설에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 자동차시장의 핵심인 독일에도 생산기지와 연구개발센터를 짓는다.

    생산능력은 지난해 53GWh에서 2022년 160GWh로 증가할 전망이다. 배터리 제조과정 가운데 '셀→모듈→팩'에서 모듈 단계를 생략한 CTP(Cell to Pack) 기술까지 더하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테슬라가 중국에서 판매하는 모델3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메르세데스 벤츠, 혼다, 다임러 등과도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3사 입장에서는 재무 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외부 경쟁자들의 도전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인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제2의 반도체'로 간주하고 기술개발, 시장 개척, 대량 생산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만큼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재무적 체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회사를 넘어 그룹 차원의 미래 먹거리로 여기고 경쟁이 과열되고 있기 때문에 전략의 방향성이 배터리시장에서의 생존 여부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