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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활동을 한 실업자에게 주는 구직급여(실업급여) 지급액이 올해 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실업자 생활안정을 위해 제도를 도입한지 25년 만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실업급여는 급증하고 재취업률은 갈수록 떨어지는 가운데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까지 겹치면서 올해 고용보험기금이 바닥을 드러낼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401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6만2000명 늘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동자가 실직한 경우 재취업 활동 기간에 생활안정을 위해 지급하는 실업급여 지급액은 1조974억원으로 집계됐다.
실업급여는 지난 5월 1조162억원을 기록했다. 1995년 고용보험제도 도입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1조원을 넘겼다. 이후 6월 1조1103억원, 7월 1조1885억원 등 넉달 연속으로 1조원을 웃돌았다.
올 들어 실업급여 누적 지급액은 총 7조8194억원이다. 지난해 1년간 지급한 총액은 8조913억원이다. 이미 지난해 지급액의 96.6%에 도달했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지난 4월 65만1000명, 5월 67만8000명, 7월 71만1000명, 8월 73만1000명으로 계속 증가하다 지난달 70만5000명으로 증가세가 한풀 꺾였다.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도 4월 12만9000명, 5월 11만1000명, 6월 10만6000명, 7월 11만4000명으로 10만명대를 유지하다 지난달 9만명대로 둔화했다.
하지만 8월 중순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격히 재확산하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됐던 만큼 9월 이후 실업급여 지급액이 현저히 줄어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로선 연내 실업급여 10조원 시대가 열릴 게 확실시된다. 현 추세대로면 이르면 고용노동부의 10월 노동시장동향 통계에서 실업급여 지급액이 1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실업급여는 보통 연말에 정년퇴직자와 계약 만료자가 쏟아지면 이듬해 1·2월 신청이 몰렸다가 취업시즌이 시작되는 3월부터 줄어든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실업자가 늘면서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
애초 올해 실업급여 예산은 9조5158억원이었다. 지난해 7조1828억원보다 32.5% 증액됐다. 지급기간 연장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수혜금액 증가 등 보장성 확대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고용쇼크가 이어지면서 정부가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확보한 총예산은 12조9000억원까지 늘었다. 노동부는 앞으로 남은 넉달간 매달 1조원 안팎으로 실업급여가 지출되면 예산 범위 내에서 운용은 할 수 있다는 태도다.
그러나 코로나19 2차 유행이 현실화하면서 실업급여가 바닥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정부의 불안감이 엿보인다. 정부는 4차 추경안에도 실업급여 예산 2000억원을 추가 편성한 상태다. 실업자 3만여명에 실업급여를 더 줄 수 있는 금액이다.
정부가 실업급여 예산 추가 확보에 나섰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고용 불안은 여전하다. 혈세를 투입하는 재정일자리 사업을 일부 재개했는데도 취업자 수가 여섯달 연속 감소한 것은 정부로선 부담이다. 지난 9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보면 취업자 수는 2708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27만4000명(-1.0%) 줄었다.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8개월(1~8월) 연속 감소한 이후 11년 만에 최장기간 감소세다.
반면 8월 실업자 수는 86만4000명으로 지난해보다 6000명(0.7%) 늘었다. 실업률은 3.1%로 8월 기준으로는 2018년(4.0%) 이후 최고치다. 체감실업률을 보여주는 고용보조지표3(확장실업률)은 13.3%로 1년 전보다 2.3%포인트(P) 올랐다. 청년층 확장실업률도 24.9%로 3.1%P 상승했다. -
더 큰 문제는 실업급여 지급액은 급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재취업률은 떨어진다는 데 있다. 9일 국민의힘이 내놓은 2019년 결산 100대 문제사업 심사자료에 따르면 실업급여 지급액은 2014년 3조9768억원에서 지난해 8조917억원으로 5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박근혜 정부였던 2015년 4조3823억원으로 10.20% 증가했다가 2016년 6.93%로 증가 폭이 둔화했지만, 이듬해 7.23%로 반등한 이후 폭증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실업급여 지급액의 기준이 되는 최저임금이 급증하면서 2018년 6조4549억원, 지난해 8조917억원으로 각각 28.46%와 25.36% 폭증했다.
반면 재취업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실업급여를 받다가 재취업한 비율은 2016년 31.1%, 2017년 29.9%, 2018년 28.9%, 지난해 25.8%로 내리막이다. 구조적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세금누수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고용보험기금 고갈이 목전에 다가왔다고 경고한다. 지난 7월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10조2544억원이었던 고용보험기금 누적적립금은 지난해 7조3532억원으로 줄었고 올해 고갈될 위기에 놓였다. 예정처는 올해 기금 수입은 17조7363억원, 지출은 21조5344억원으로 3조7981억원 적자를 예상했다. 이는 정부가 3차 추경안에 배정한 고용보험기금 긴급지원금 3조4700억원을 반영한 것으로 긴급수혈한 나랏돈을 빼고 나면 잔액이 851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와 관련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고용보험의 당기순이익이 마이너스가 나더라도 (실업자에게) 재정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적자 동향을 보며 단계적으로 (고용보험료율) 올리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