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솔루스 인수에 3천억 출자… 매각인수군 최상단 '찜'日 쇼와덴코 투자-롯데알미늄 증설 가속 등 사업 본격화
  • ▲ 롯데케미칼 울산1공장. ⓒ연합뉴스
    ▲ 롯데케미칼 울산1공장. ⓒ연합뉴스
    롯데그룹이 배터리 소재사업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고 있다. 인수를 저울질하던 두산솔루스에 출자를 결정하면서 향후 예상되는 잠재적 인수군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다. 앞서 화학 계열사들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것에서 나아가 적극적인 스탠스를 취한 것이다.

    특히나 상대적으로 진입 속도가 더뎠다는 점, '순수 화학사'로 실적 회복이 쉽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보다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정밀화학은 이사회를 열고 '스카이스크래퍼 롱텀 스트래티직 사모투자 합작회사'에 2900억원을 출자하기로 의결했다.

    이 펀드는 이달 초 두산솔루스 지분 53%를 6986억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국내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가 두산솔루스 인수를 위해 설립한 펀드다.

    스카이레이크가 두산솔루스 지분 53%를 약 7000억원에 인수하는 점으로 볼 때 롯데정밀화학은 두산솔루스 지분 약 22%를 인수하는 셈이다.

    롯데정밀화학 측은 "투자수익 창출을 위해 스카이스크래퍼 롱텀 스트래티직 사모투자 합작회사에 유한책임사원(LP)으로 참여했다"며 "중장기 성장을 위한 스페셜티 사업 강화 차원에서 스카이레이크가 두산솔루스 인수를 위해 설립하는 사모펀드에 기관투자자로 참여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롯데의 이번 인수 참여가 상대적으로 뒤쳐진 전기차 배터리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두산솔루스는 배터리 4대 핵심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가운데 음극재에 활용되는 핵심소재인 동박을 생산하는 업체다.

    일단 경영권이 없는 재무적 투자 개념으로 참여한 뒤 향후 인수에 뛰어드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롯데는 두산솔루스가 매물로 나왔을 당시부터 관심을 보였던 데다 대부분의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 가치를 키워 시장에 다시 매물로 내놓는다는 점 역시 힘을 더하고 있다.

    실제 스카이레이크는 블라인드펀드의 존속기한인 7년 이내에 두산솔루스를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롯데가 인수자로 나선다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구조다.

    올해 초부터 대규모 M&A 의지를 보여 왔던 롯데케미칼이 중심이 돼 인수 검토에 나서면서 예비입찰 전까지 시장은 롯데를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기도 했다. 최종적으로는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적정가격을 두고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의 두산솔루스 인수 가능성은 두산솔루스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일단 출자하는 방식으로 발을 걸쳐 놓으려는 듯하다"며 "그룹 차원에서 배터리 관련 사업을 키우고 있는 만큼 이번 투자는 향후 인수를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스카이레이크는 롯데의 투자를 비롯한 펀드 조성으로 다음 달 두산솔루스 인수를 완료한 뒤 곧바로 4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통해 헝가리 공장을 현재 1만t 규모에서 3만t 수준으로 증설하고 매출 확대에 나선다는 목표다.

    특히 이번 투자를 계기로 롯데가 그룹 차원에서 배터리 소재 사업 확대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롯데는 경쟁 그룹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이 가장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은 삼성SDI, SK는 SK이노베이션, LG는 LG화학 등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하고 있다. 기술과 생산능력 면에서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들과 손잡고 전기차를 양산 중이다. 5대 그룹 중 롯데만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이렇다 할 사업영역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다.
  • ▲ 두산솔루스 헝가리 전지박 공장 위치 및 경쟁력. 자료=두산솔루스. ⓒ현대차증권
    ▲ 두산솔루스 헝가리 전지박 공장 위치 및 경쟁력. 자료=두산솔루스. ⓒ현대차증권
    하지만 올 들어 올 들어 확대 의지를 지속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5월 롯데케미칼의 일본 쇼와덴코 지분 4.69%에 대한 1700억원 투자가 대표적이다.

    쇼와덴코는 지난해 롯데가 8조원을 배팅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던 배터리 소재업체 일본 히타치케미칼을 인수한 곳이다. 히타치케미칼은 양극재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업체로 꼽히는 곳으로, 인수전 당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직접 인수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등 공을 들인 바 있다.

    업계에서는 롯데가 히타치케미칼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쇼와덴코에 대한 간접투자를 통해 배터리 소재사업에 대한 의지를 더욱 굳혔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롯데가 해오던 '빅딜'은 아니지만, 그간 영위해오지 않던 분야에 거금을 쏟아 부었다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사업 확대를 위해 추가로 쇼와덴코 지분을 사들일 수 있다는 관측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쇼와덴코의 주요 주주가 일본 금융권인 점 역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룹의 또 다른 화학계열사인 롯데알미늄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롯데알미늄은 헝가리 터터바녀 산업단지에 1100억원을 투자해 2차전지 양극박 생산 공장 건설에 나섰다.

    내년 말 완공되면 롯데알미늄은 연간 3만t 규모의 양극박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최근에는 280억원을 들여 배터리용 양극박 안산1공장 증설도 마쳤다. 증설을 통해 안산1공장의 생산능력은 1만2000t으로 증가했다.

    양극박은 배터리 용량과 전압을 결정하는 양극활물질을 지지하는 동시에 전자의 이동 통로 역할을 하는 알루미늄박 소재로, 높은 열전도성으로 전지 내부의 열 방출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음극재에 동박이 있다면 양극재에는 알루미늄박이 핵심소재로 꼽힌다.

    특히 헝가리 공장의 경우 두산솔루스의 동박공장이 위치한 만큼 롯데알미늄과 영업 네트워크를 공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배터리소재의 패키지 영업도 가능해진다.

    롯데알미늄 측은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배터리용 양극박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국내외 생산라인을 지속 확대할 방침"이라며 "특히 유럽의 친환경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는 등 글로벌 사업전략을 적극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의 이 같은 움직임에 시장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배터리 사업을 직접 키우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3사와 달리 소재 육성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주력인 석유화학업이 불황을 거듭하면서 사업다각화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석유화학 '빅3'로 꼽히며 경쟁하던 LG화학과 한화솔루션이 각각 배터리, 태양광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반면 롯데케미칼만은 여전히 '순수 화학사'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석유화학업에 중국 기업들이 몰리면서 수년째 불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도 쉽지 않아 실적 회복이 요원한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실적 전망치 분석 결과 롯데케미칼의 하반기 영업이익은 2751억원 수준일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하반기 4654억원에 비해 40.8% 감소한 규모다. 코로나19 확산과 대산공장 폭발사고 등으로 부진했던 상반기(영업손실 530억원)에 비해서는 개선됐지만, 회복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2240억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지난해 1조1072억원의 20.2%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며 2014년 3509억원 이후 최저치다.

    재계 한 관계자는 "'포스트 반도체'로 불리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서 국내 5대 그룹 가운데 롯데만 유일하게 제외돼 위기감이 있을 것"이라며 "롯데가 앞으로 배터리 소재 업체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