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LG화학 등 신설 및 중단사업장 재가동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업계 수익다변화 드라이브늘어나는 설비-부족한 수요 전망 속 공급과잉 우려도
  • ▲ 여천NCC 제2 사업장. ⓒ여천NCC
    ▲ 여천NCC 제2 사업장. ⓒ여천NCC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가 NCC(나프타분해설비) 신증설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해 불확실한 시황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과잉공급으로 인해 또 다시 시장이 침체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따른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NCC는 원유를 정제해 얻어지는 나프타를 고온에서 분해해 '석유화학의 쌀'이라고 불리는 에틸렌을 비롯한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에틸렌을 비롯해 프로필렌 등 기초합성수지, 합성원료, 합성고무, 기타 화학제품을 만들어낸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여천NCC는 여수 제2 NCC와 부타디엔(BD) 설비 증설을 완료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2019년 3월부터 2년 9개월간 약 9000억원을 투입해 연간 에틸렌 34만t, 프로필렌 17만t, BD 13만t의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보했다.

    이에 따라 에틸렌 230만t, 프로필렌 128만t, BD37만t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돼 국내 최대 수준의 석유화학회사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됐다. 에틸렌, 프로필렌, BD는 플라스틱과 합성고무 등 석유화학제품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된다.

    여천NCC 측은 "이번 사업의 성공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석유화학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와 원가 절감을 통해 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졌다"며 "에틸렌 300만t 생산체계를 갖춰 아시아 최대 석유화학회사로 성장하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1위 에틸렌 생산업체인 LG화학의 여수공장 NCC 가동률은 100%까지 올라왔다.

    앞서 화재 사고로 약 3개월간 중단됐던 여수NCC는 지난달 부분 재가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정상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설비는 지난해 11월 설비 사무동에서 화재가 발생해 가동이 중단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달부터 120만t 생산체계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2조6000억원을 투입한 NCC 80만t 증설 작업은 상반기 중으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완공시 여수공장의 생산능력은 200만t 규모로 늘어나고 대산공장 130만t을 합해 총 330만t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이는 국내 업계 최대 규모다.

    LG화학 측은 최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신규 NCC는 상반기 내 가동을 목표로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화토탈도 1470억원을 투입한 NCC 증설을 상반기 내 완료할 예정이다. 해당 설비는 나프타 대신 LPG를 활용해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기 때문에 원가경쟁력에서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다.

    한화토탈은 최근 2~3년간 꾸준히 설비 투자를 진행해왔으며 이번 증설로 연간생산량은 에틸렌 155만t, 프로필렌 110만t으로 늘어나게 된다.

    지난해 화재로 멈춰 섰던 롯데케미칼 대산NCC도 연말부터 정상 가동을 시작했다. 대산공장의 NCC 생산능력은 에틸렌 기준 연간 110만t 규모다. 롯데케미칼은 대산공장 사고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맞물리면서 지난해 6년 만에 가장 낮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처럼 석유화학업계가 공격적으로 NCC 증설에 나서는 것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석유화학산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수록 수익이 난다"며 "설비 확충을 통해 원가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불확실성을 돌파해 나가는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 에쓰오일 울산 RUC&ODC(잔사유 고도화 및 올레핀 다운스트림 설비). ⓒ에쓰오일
    ▲ 에쓰오일 울산 RUC&ODC(잔사유 고도화 및 올레핀 다운스트림 설비). ⓒ에쓰오일
    뿐만 아니라 정유업계에서도 수익다변화 차원에서 NCC 투자에 나서고 있다. 올해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예정된 정유사들의 증설 규모는 모두 305만t으로, 같은 기간 석유화학업체들의 증설 규모 148만t을 크게 웃돈다.

    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과 합작법인 현대케미칼을 통해 원유 정제부산물을 활용, 석유화학제품 생산성을 높이는 HPC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총 2조7000억원이 투입되는 이 공장은 나프타보다 저렴한 탈황중질유로 에틸렌을 만들 수 있다.

    상반기 완공시 에틸렌 75만t, 프로필렌 40만t, 폴리에틸렌(PE) 85만t, 폴리프로필렌(PP) 50만t, BD15만t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2019년 대규모 올레핀 생산시설 가동으로 97만t 규모의 올레핀 계열 제품 생산능력을 갖춘 에쓰오일도 온산공장에 약 5조원을 투자해 연 생산능력 150만t 규모의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GS칼텍스도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연간 에틸렌 70만t, PE 5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올레핀생산시설(MFC)을 짓고 있다.

    정유사들은 그동안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석유화학사들에 판매했으나, 이제 직접 정유사가 나프타를 활용해 에틸렌 등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유·석유화학업계가 잇따라 NCC 신증설에 나서면서 국내 에틸렌 생산규모는 2020년 961만t에서 올해 1225만t으로 늘어난다. 에쓰오일이 설비 확충을 완료하는 2024년에는 1415만t으로 47.2% 급증할 전망이다.

    NCC에서 생산되는 에틸렌은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수요 회복과 전방 시장의 강세로 가격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에틸렌 수출가격은 t당 975달러로, 지난해 초와 비교해 270달러 이상 급증했다. 1분기에도 중국의 재고 확충 수요 등으로 강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비대면 생활방식이 이어지면서 포장재 수요와 가전제품 수요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 등으로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면 다소 약세를 보였던 자동차, 의류 등에 활용되는 화학소재까지 회복되면서 전반적인 석유화학사업 호조로 이어질 전망이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향후에는 기존에 부진했던 전방산업에서 수요 회복이 나타나며 추가적인 시황 상승을 견인할 전망"이라면서 "올해 에틸렌 기준 화학 수요 증가는 약 900만t 수준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설비 확충 추이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등에서도 진행 중인 만큼 글로벌 과잉공급 우려를 제기한다.

    장홍석 KDB미래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석유화학산업은 증설 및 수요 둔화라는 위협 요인이 증가하고 있다"며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대규모 증설로 인해 기초유분은 과잉공급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체적으로 에틸렌은 2019~2024년 동안 증설 규모가 5900만t으로 확대되지만, 수요 증가는 3800만t에 불과해 설비가동률이 2019년 90.5%에서 2024년 83.4%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성동원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지난해 이후 대규모 석유화학설비 신증설이 예정돼 있어 향후 과잉공급이 더욱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특히 중국의 자급률 제고에 따라 수입 수요 감소는 한국 석유화학업계에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