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일가, 9시50분 검은색 벤 타고 입구 들어서북미 출장 중인 이재용 부회장은 불참코로나 여파에 삼성 사장단도 참석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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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일 오전 11시26분경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검은색 벤을 타고 호암미술관을 빠져나가는 모습. ⓒ이성진 기자
고(故)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의 34주기 추도식이 19일 진행된 가운데 미국 출장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불참했다.호암 추도식은 범 삼성가의 공동행사로, 20년간 이어져 오다 삼성과 CJ의 분쟁 이후 분리해 치르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는 시간대도 다르게 해서 진행하고 있다.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이날 오전 9시 51분경 검은색 벤 차량을 타고 호암미술관 입구로 들어섰다.북미 출장 중인 이 부회장은 이날 추도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가석방 이후 처음으로 해외 출장에 나선 이 부회장은 지난 16~17일 모더나·버라이즌 등을 방문해 경영진과 면담을 갖는 등 바쁜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추도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삼성그룹 사장단들도 추도식에 불참하며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삼성 일가는 1시간 30분 가량 머둔 뒤 오전 11시 26분경 자리를 떠났다.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은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설립한 뒤 사업영역을 넓히며 1969년 삼성전자를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선도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지난 1910년 2월 12일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호암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초석을 마련했다.호암은 1930년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귀국 후 일제 강점기 시대에 민족경제 육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무역업을 통한 사업보국의 뜻을 펼치기 위해 1938년 3월 대구에서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삼성상회의 성공에 힘입어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세워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했다. 1960년대에는 비료, 전자, 유통, 의료, 섬유, 국토개발산업에 뛰어들고 1970년대에는 수출증대와 함께 중화학 공업과 방위산업을 진행했다.1980년대에는 전자, 항공, 정밀, 화학 등 기술산업을 육성해 대한민국 경제 근대화를 주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업적을 기려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도 했다.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삼성그룹 특유의 '신상필벌' 원칙도 호암에서부터 비롯됐다. 호암은 작은 공도 상 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대신 작은 잘못에 대해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경계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