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마트 입점으로 급성장한 수제맥주입점 못한 소규모 양조장은 고사 위기'온라인 판매' 공감 적어… 세밀한 조정 수반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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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란계는 태어난 지 대략 20주가 지나 체중이 커지면 케이지(Cage)로 이동한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산란계를 보호하고 관리를 수월하게 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케이지에 갇힌 닭들은 천적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걱정도, 밥이나 물을 찾아 다녀야하는 수고로움도 덜 수 있다. 갇혀있지만 대신 안전하고 식음이 보장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닭은 아무리 성장하더라도 이 견고한 케이지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 수제맥주의 본격적인 시작은 2014년 주세법 일부 개정을 통해 소규모 맥주 제조자가 만든 술을 외부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수제맥주의 외부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시장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생겼다.

    2018년에는 백화점과 마트,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 판매가 가능해졌다. 현재 많은 소비자들이 알고 있는 제주맥주나 카브루의 제품들이 매대에 놓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 수제맥주 두어 캔을 사서 귀가하는 이 일상적인 그림을 그려낸 것은 바로 편의점이다. 소비자에 가장 밀착해있는 판매채널인 만큼 수제맥주의 소비 확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수제맥주업계가 양분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쯤이다. 캐닝(Canning, 병입)이 가능한 업체들은 양산을 통해 편의점과 마트 납품에 성공하며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했다. 판로 문제를 해결한 리딩기업들은 급격하게 외형이 성장했다. 소비는 늘어나고 시장은 커졌다.

    수제맥주 시장은 오는 2023년 37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대부분 리딩기업들의 몫이다. 편의점과 마트 납품 여부가 수제맥주 기업으로서 성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케이지 밖의 소규모 양조장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맞물려 매출이 90% 감소하며 사실상 고사됐다. 리딩기업들이 수천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상장을 준비하는 동안 많은 수규모 양조장은 사업을 접어야했다.

    최근 수제맥주 시장을 둘러싼 쟁점은 온라인 판매다. 수제맥주업계에서는 소규모 양조장들의 생존을 위해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수제맥주만’ 허용해달라는 요구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수제맥주업계의 요청 이전에도 주류 온라인 판매에 대한 요구는 지속적으로 있어왔지만 청소년 보호 등을 앞세운 기존의 거대한 담론을 깨지는 못했다.

    문제는 더 있다. ‘현재로서는’ 수제맥주의 온라인 판매는 케이지 속에 또 다른 케이지를 놓는 우(愚)를 범하는 격이다. 지금 당장 수제맥주의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지더라도, 소규모 양조장은 결국 캐닝 설비를 갖추지 못해 시설을 갖춘 리딩기업이나 또는 기존 주류 대기업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종속의 첫 걸음이다.

    소규모 양조장의 생존을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이 온라인 판매라면, 세밀한 조정이 우선돼야한다. 최소한의 설득력을 갖추려면 양조장이 위치한 지역에만 주문 가능한 한정 온라인 판매 등의 명분을 수제맥주업계 내부에서 먼저 만들고, 공감을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