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美·英 반대에 ARM 인수 좌절국가별 '기업 결합 심사', M&A 최대 암초 떠올라글로벌 패권 전쟁 격화 속 빅딜 제동걸린 반도체업계삼성전자, 100조 쥐고도 딜 추진 '난망'... 셈법 골몰
  • ▲ ⓒ엔비디아
    ▲ ⓒ엔비디아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반도체를 두고 글로벌 각 국들이 자국 산업 보호주의를 내세우며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특히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을 적극적으로 막아서며 견제의 날을 세우고 있어 삼성전자와 같이 반도체 분야에서 빅딜을 추진하려는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9일 관련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추진하고 있던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암(ARM) 인수가 최종적으로 무산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엔비디아가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규제당국의 저지로 ARM 인수를 포기했다"고 인수 불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엔비디아와 ARM의 M&A는 반도체업계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형 딜이었다. 우선 인수 규모만 해도 반도체업계 최대 규모인 660억 달러(약 79조 원)라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게다가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ARM은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대부분의 핵심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업계 독보적 회사들이라는 점에서 M&A 후 시장에 미칠 영향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렇게 시장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만큼 이 둘의 결합을 우려하는 시선도 넘쳐났다. 새로운 반도체 공룡의 탄생을 앞두고 경쟁사들도 깊은 우려를 표한 것 뿐만 아니라 최근 빚어지고 있는 반도체 품귀현상에 유독 민감해 하는 글로벌 주요 국가들도 이들의 결합에 반기를 들었다.

    그 중에서도 엔비디아 본사가 있는 미국과 ARM 연구소가 있는 영국이 이번 M&A에 완강한 반대 입장을 표하며 결국 엔비디아가 딜 추진을 그만 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영국 정부는 자국에서 유일하게 반도체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ARM의 매각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반도체 설계 관련 IP가 미국 기업으로 넘어간다는 점을 영국의 반도체 국가 안보를 저해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보고 엔비디아의 인수 추진 초기부터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영국 경쟁시장청(CMA)이 공정경쟁을 문제 삼아 이 M&A건을 최장 6개월 동안 심층 심사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사실상 인수를 가로 막았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도 엔비디아와 ARM의 딜을 무산시키기 위해 제소라는 강력한 방법을 썼다. FTC는 두 회사의 합병을 '불법적 수직 결합'으로 규정하고 2년 여의 시간을 끌다가 제소를 통해 법정 다툼으로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가 결정적으로 인수를 포기하게 된 것이라는 데 힘이 실린다.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게 되면 현재 ARM의 반도체 아키텍처에 의존하고 있는 수 많은 글로벌 IT기업들에게도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게 된다. 이번에 인수가 최종 무산되면서 이 같은 리스크에선 당장 벗어날 수 있게 됐지만 반도체업계에서 또 다른 M&A를 준비하던 기업들 입장에선 기존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곳이 삼성전자다. 삼성은 최근 공격적으로 반도체 분야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 퀀텀 점프에 나설 수 있는 인수 대상을 적극적으로 물색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공식적으로 "조만간 의미있는 빅딜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까지 한 상황이다.

    삼성이 이 같은 딜 추진 의지를 갖고 있고 100조 원 규모의 M&A 실탄까지 손에 쥐고 있는 상황이라 빅딜은 시간 문제에 불과할 정도였지만 최근 반도체업계 M&A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M&A 딜 성사 여부에는 여러가지 변수가 작용할 수 있지만 최근 반도체업계 M&A건에는 구조적인 이슈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최근 국가 간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 기조가 날로 심해지고 있어 당분간은 빅딜을 추진하는 기업이 지지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봤다. 더구나 삼성 같은 종합반도체기업은 전방위적으로 견제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도 내부적으로 이런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M&A를 추진할 수 있는 적기를 가늠하며 숨을 고를 가능성이 엿보인다. 대신 시스템 반도체와 같이 대규모 투자가 예정돼있는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고 설비와 기술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