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우크라사태 경기 하방위험 확대…기업심리도 악화"中성장률 둔화·美금리인상 가속 등 '퍼펙트 스톰' 우려 커韓경기 둔화 위험…ADB 3.0%·무디스 2.7% 성장률 하향조정
  • ▲ 경기 하향.ⓒ연합뉴스
    ▲ 경기 하향.ⓒ연합뉴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리 경제의 하방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대외 불확실성 확대로 기업 심리도 크게 악화했다는 판단이다.

    한국 경제가 경기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W자형' 더블딥'(이중침체)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KDI "우크라 사태에 기업심리 크게 악화"

    KDI는 9일 내놓은 '4월 경제동향'에서 "우리 경제는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대외 여건이 악화하며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대외 여건에 대한 우려로 경기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됐다"고 평가했던 것보다 부정적이다. KDI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원자잿값의 가파른 상승세와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로 주력 업종을 중심으로 기업 심리가 크게 악화됐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말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농림어업을 제외한 전(全) 산업생산은 전달보다 0.2% 감소했다. 2개월 연속 줄었다. 산업생산 연속 감소는 2020년 1∼5월 5개월 연속 기록 이후 21개월 만에 처음이다. 숙박·음식점, 철도·항공여객운송업 등 서비스업 생산은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소비는 전달보다 0.1% 증가하며 한달 만에 반등했으나 증가폭은 작았다. 설비투자는 전달보다 5.7% 감소했다. 2020년 2월 이후 2년 만에 최대폭의 감소를 기록했다.

    앞으로 경기상황을 예측하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99.8)는 전달보다 0.3포인트(p) 내리며 기준치인 100을 밑돌았다. 8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는 3년 만에 최장기간 하락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도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한 수출은 지난달에도 1년 전보다 18.2% 증가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교란의 여파로 무역수지는 1억4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엔화가 약세를 보인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엔저는 일본과 수출 경쟁을 벌이는 우리나라 품목의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져 수출 전선에선 경계 대상으로 꼽힌다.
  • ▲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에서 보호복을 입은 경찰이 황푸강을 건너 푸둥신구로 통하는 터널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연합뉴스
    ▲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에서 보호복을 입은 경찰이 황푸강을 건너 푸둥신구로 통하는 터널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연합뉴스
    ◇대외여건 악재 또 악재

    최근의 대외여건 악화는 퍼펙트 스톰(여러 악재가 겹친 초대형 경제 위기) 수준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주름살을 더 깊게 하는 불안요인이다.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원자재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무역수지 악화는 물론 국내 물가 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3월 무역수지는 1억4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4.1% 오르며 2011년 12월(4.2%) 이후 10년3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석유류는 31.2%나 오르며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코로나19 재확산과 성장률 둔화도 부담이다.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상하이시 봉쇄는 국제 공급망 차질과 물류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글로벌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중국 정부가 봉쇄 위주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면 성장률을 최소 0.6%p 깎아 먹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5.1%에서 4.6%로 0.5%p 내렸다.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5.5% 안팎'으로 제시했다. 3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중국이 5%를 지키는 것도 녹록지 않을 거라고 전망한다. 중국의 경기 침체는 중국 의존도가 수출액 기준으로 25%쯤에 달하는 한국 경제에도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앞서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 경제성장률이 1%p 떨어지면 한국 경제성장률은 0.5%p 하락 압력을 받는다고 분석한 바 있다.
  • ▲ 긴축 가속하는 미 연준.ⓒ연합뉴스
    ▲ 긴축 가속하는 미 연준.ⓒ연합뉴스
    빨라지는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도 적잖은 변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6일(현지 시각) 공개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을 보면 다수의 FOMC 위원은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올라가거나 강해진다면 앞으로 회의에서 한 번 이상의 50bp(1bp=0.01%p) 기준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p 올린 데 이어 다음 달에 0.5%p 올리는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40년 만의 고물가를 겪고 있다.

    연준은 나아가 이르면 다음 달부터 보유 자산 축소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것을 예고했다. 연준은 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은 경기침체에 대응하려고 2020년부터 매달 1200억 달러 규모의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여왔다. 연준 보유자산은 8조9000억 달러(약 1경902조5000억원)로, 코로나19 사태로 2년 새 2배쯤 불어났다. 이번에 공개된 의사록에서 회의 참석자들은 "대차대조표 축소(양적 긴축)의 월 상한선을 미 국채 600억 달러, MBS 350억 달러로 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는 연준이 양적 긴축에 나섰던 지난 2017∼2019년 500억 달러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빠른 속도다.

    연준이 사들인 자산을 빠르게 되팔면서 다이어트에 나서면 시장의 풍부했던 유동성이 급속히 쪼그라들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긴축에 대비하라고 신흥국에 경고해온 상태다. IMF는 미 연준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면 수요와 교역 둔화를 동반하면서 신흥시장의 자본 유출과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세대 성태윤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발 금리 인상 가속은) 주변국에는 지속적인 금리인상 등 불가피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미국 내 수익률이 높아지면 우리는 원화 약세가 진행될 수 있어 부담스러운 측면이 없잖다"고 설명했다.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5.6원 오른 1218.3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며칠간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으나 미 연준발 긴축 예고와 서방의 대(對)러시아 추가 제재 가능성이 커지면서 다시 상승폭을 키웠다.

    대내외 악재가 이어지면서 세계 주요 기관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이 잇따라 햐향조정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6일 내놓은 '2022년 아시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종전보다 0.1%p 낮춰잡았다. 대신 물가상승률은 1.9%에서 3.2%로 대폭 올렸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와 무디스도 지난달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나란히 3.0%에서 2.7%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