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방식 두고 갈등…주민들 특별분양권 요구서울시·SH공사 "이주대책 대상자 해당 안돼"
  • ▲ 구룡마을 입구 전경.ⓒ박정환 기자
    ▲ 구룡마을 입구 전경.ⓒ박정환 기자
    국내 부동산시장의 '제1 대장주'를 꼽으라면 단연 강남이다. 천정부지로 뛰던 강남 아파트값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동산 불패론'에 불을 지폈다. 

    최근 극심한 시장침체로 철옹성 같던 강남집값도 흔들리고 있지만 여전히 압구정·청담·대치·개포 등 국내 대표 부촌들이 주는 상징성은 비교 대상이 없다.

    그런 강남에 축구장 40여개 면적의 대규모 판자촌이 존재한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구룡마을은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과 함께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린다. 

    1988년 서울올림픽 준비 당시 정부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개포동 일대 무허가 주택을 철거하자 집을 잃은 이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동네를 형성했다. 현재 약 26만6000㎡ 부지에 700여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2011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공주도의 구룡마을 개발계획을 발표한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 공사는 개발과 보상 방식을 둘러싸고 거주민들과 서울시·강남구·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갈등이 심화되며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최근 김헌동 SH공사 사장이 "구룡마을 등 새로 개발할 곳의 용적률을 높이겠다"며 사업 추진 의지를 내비쳤지만 실제 이행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 ▲ 구룡마을 전경.ⓒ박정환 기자
    ▲ 구룡마을 전경.ⓒ박정환 기자
    지난 14일 찾은 구룡마을은 마을입구에 붙은 현수막과 벽보들이 위압감을 줬다. 여기에는 '정부 주도의 구룡마을 개발을 강력히 촉구한다', '주민들에게 토지매입 우선권을 보장하라', '임대 아닌 특별공급으로 보상하라' 등의 글귀가 적혀 있어 여전히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 반대편에는 왕복 8차선의 양재대로를 사이에 두고 '래미안블레스티지' 등 초고가 고층아파트 단지가 늘어서 낙후된 마을 전경이 더욱 부각됐다. 현재 이 아파트의 호가는 20억원을 훌쩍 넘는다. 

    왼편으로는 6700여가구 규모의 매머드급 단지인 '개포주공1단지(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2024년 1월 입주예정인 이 아파트의 분양권은 20억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마을입구를 지나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판자촌이 모습을 드러냈다. 판자촌을 지나 대모산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니 찢겨진 비닐하우스와 토사가 밀려 내려온 개천 등이 눈에 띄었다. 

    올 여름 마을을 덮쳤던 수해의 흔적이다. 지난 8월 115년만의 폭우로 구룡마을의 상당부분이 물에 잠겼고 주민들은 복구기간 임시 거주시설에 머물러야 했다.

    이날 만난 한 주민은 "이 동네에 뭘 볼게 있다고 자꾸 찾아오느냐"며 경계심을 보였다.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재개발이 계속 미뤄지는 동안 구룡마을은 한국 빈민가의 상징처럼 돼 버렸다"며 "주말만 되면 대모산을 찾은 등산객이나 관광객들이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데 삶의 터전이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는 원래 1100여가구의 주민들이 거주했지만 개발과 보상 방식을 두고 두패로 갈렸다. 서울시가 토지 수용후 지역을 개발해 기존 거주민에게는 임대아파트를 제공하고 임대료를 감면해주는 공영개발을 추진하자 찬성측과 반대측으로 나뉜 것이다.

    공영개발 방식에 찬성한 400여가구는 SH공사 소유의 임대주택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반대측 700여가구는 임대아파트 입주권이 아닌 마을 부지에 지어질 아파트의 분양권을 요구하며 계속 거주하고 있다. 

    또 사업에는 찬성하지만 공사기간에 거주할 임대아파트의 임대료가 감당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거주중인 주민들도 있다. 
  • ▲ 구룡마을 전경.ⓒ박정환 기자
    ▲ 구룡마을 전경.ⓒ박정환 기자
    현행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공익사업 시행자는 이주대상자에게 주택을 공급하거나 이주정착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무허가건축물 소유자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구룡마을의 경우 건물들이 대부분 무허가인 만큼 이주대책 대상자가 아니고 분양권을 줄 이유도 없다는 게 서울시와 SH공사의 입장이다.

    반면 주민들은 토지보상법 예외규정인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보상법'을 근거로 분양권을 요구하고 있다. 

    이 법에선 1989년 1월 이전 무허가건축물 소유자는 공영개발로 퇴거할시 이주대책대상자에 포함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문제는 1989년 이전에 마을내 건축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장부나 서류 같은 근거가 없어 주민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마을주민 A씨는 "주민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층으로 당장 임대료를 낼돈도 없는 이들이 태반"이라며 "주민들은 작은 아파트라도 내집을 원하는데 서울시는 안된다고만 하니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다 예전처럼 사업이 엎어지지 않겠나"고 말했다. 

    구룡마을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적잖다. 개포동의 C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무허가 건물에 살면서 현실성 없는 분양권을 요구하고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인근주민들의 의견이 많다"며 "일단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지역 부동산에 큰 호재가 될 수 있지만 착수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