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호가 1억~2억원 '뚝'…매도자들은 관망세 돌입조건부 전세 등 대출 중단에 계약자들 잔금 불안 확산매수 포기 움직임까지…"상급지 이주 실수요자도 피해"
  • ▲ 서울 송파구의 부동산 중개업소ⓒ연합뉴스
    ▲ 서울 송파구의 부동산 중개업소ⓒ연합뉴스
    "지난달 아파트를 매수하고 임차인을 구하면서 그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려고 했던 계약자가 갑자기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을 막는다는 소식에 좌불안석이에요. 이번 주말에 계약서를 쓰기로 했던 고객도 추가 대출을 못 받게 되면서 매수를 포기했어요. 한 달 만에 정부가 정책을 뒤집듯 하면 시장이 흔들릴 만큼 불안감이 커진 상황이에요"(대치동 K공인중개사무소 대표)

    서울시가 집값 상승세를 막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을 강남 3구와 용산구 전체로 확대 재지정하고 1주택 이상 보유자와 조건부 전세대출 등의 대출 규제를 다시 강화하기로 하면서 시장이 대혼란을 겪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토허제에 묶인 곳은 약 2200개 아파트 단지, 40만 가구에 달한다. 특정 구역이나 단지, 행정동이 아닌 자치구 전체가 토허제에 묶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장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토허제에서 일시 해제된 지역에서 전세를 낀 매매계약을 진행 중이던 매도·매수자들은 토허제가 재시행되면 갭투자가 불가능해 23일까진 계약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도를 서두르는 집주인의 급매물이 잇따르고 있다.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이번 발표 전 호가가 32억원까지 뛰었으나 지난 19일 26억9000만원에 거래됐다. 정부와 서울시가 토허제 재지정을 발표한 날이다. 지난 21일에는 같은 단지 저층 매물이 2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 매물로 호가에서 2억5000만원 하락한 거래였다.

    잠실 엘스에도 호가를 1억∼2억원 이상 낮춘 매물들이 출현했다.

    잠실 J공인중개사는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인데 토허제 해제 호재로 호가를 높였다가 다시 재지정이 되니 집이 안 팔릴까봐 급매로 가격을 낮춰 물건을 내놓으려는 문의가 늘었다"며 "반대로 매물을 찾던 매수자들의 경우 집값 하락을 기대하면서 관망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된 서초구 반포동 일대도 호가가 크게 하락하고 매수 문의가 끊겼다.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 84㎡는 60억원에 나왔던 물건 호가가 5억원 내려간 상태다.

    아울러 토허제 해제 기대감에 집을 샀다가 대출이 막힐까 봐 걱정하는 계약자들의 문의 전화도 빗발치고 있다. 금융당국이 1주택 이상 보유자들의 주택담보대출과 갭투자(전세를 낀 매매)로 이용되는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의 자율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올해 들어 대출 문턱을 낮췄던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대출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대치동 M공인중개 관계자는 "통상 계약 후 잔금 납부 한 달 전인 1∼2개월 뒤에 대출을 일으키기 때문에 계약자들은 은행과 사전에 대출 조율이 안 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며 "전세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치르려던 계약자도 조건부 전세대출이 막히면서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대출 조건 강화 소식에 계약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조건부 전세대출은 물론, 선순위 전세대출이 있는 경우 추가 후순위 담보대출도 막히면서 차질을 빚는 것이다.
  • ▲ 송파구 아파트 단지 전경ⓒ연합뉴스
    ▲ 송파구 아파트 단지 전경ⓒ연합뉴스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중개사무소 대표는 "이번 주말에 최종적으로 집을 보고 계약서를 쓰기로 한 사람이 후순위로 추가 대출을 못 받게 되면서 도저히 잔금 마련이 안 될 것 같다며 매수를 포기했다"며 "당장은 직장 문제와 자금 부족으로 입주가 어려워 2년 뒤 실입주를 목표로 전세를 끼고 미리 집을 사두려던 경우였는데 계획이 틀어졌다며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대출 규제 강화로 단순 시세차익을 노린 갭투자자는 물론이고 상급지로 주거 이전을 계획했던 잠재적 실수요자들까지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이번 조치는 오는 7월 예정된 DSR 3단계 규제 강화, 금리 인하 여부, 정치적 불확실성과 맞물리며 시장 참여자들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며 "정책 신뢰도를 훼손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갭투자 목적의 주택 매수는 차단해야겠지만 집값이 오르기 전에 원하는 집을 사뒀다가 2∼3년 뒤 입주하겠다는 사람까지 갭투자 범주에 넣고 대출을 막는 게 바람직한지 모르겠다"며 "갈아타기 수요자들의 희망도 꺾인 상황이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