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올림픽 전후로 마을 형성…90년대 민간개발 바람공영개발로 전환, 서울시·강남구 충돌…임대vs분양 갈등도
  • ▲ 구룡마을 입구 전경.ⓒ박정환 기자
    ▲ 구룡마을 입구 전경.ⓒ박정환 기자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구룡마을은 도시개발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88년 올림픽 준비과정에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자리잡은지 벌써 30년, 구룡마을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 있다. 

    2010년대 들어 재개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지만 아파트 분양권을 달라는 주민들과 임대 입주권이 최선이라는 서울시간의 갈등이 지속되며 공사는 아직 첫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당시 전두환 정부는 도시미관을 정비한다는 명목아래 개포동에 있던 무허가주택들을 일제히 철거했다. 

    이때 쫓겨난 주민들이 1980년대 중반부터 모여 형성된 곳이 구룡마을이다. 서울 서초구 염곡동에 위치한 구룡산 북쪽자락에 위치해 구룡마을로 불렸다.

    구룡산의 명칭은 옛날 임신한 여인이 용 10마리가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 바람에 한마리가 떨어져 죽고 9마리만 하늘로 올라갔다 해 붙여졌다. 

    용이 떨어진 곳은 양재천이 됐다고 하는데 구룡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용이 현재 마을위치에 떨어져 땅의 기운이 지나치게 세졌다는 자조섞인 농담도 나온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구룡마을 인구는 급격히 늘었다. 정부의 철거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울 각지의 철거민들이 몰려들었고 마을은 최대 2000가구, 인구는 8000명 규모로 늘었다.

    구룡마을 개발이 처음 논의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현재에는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주도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민간개발 광풍이 불었다.

    당시 구룡마을 토지의 상당부분은 한때 재계순위 14위까지 올랐던 한보그룹의 정태수회장이 소유하고 있었다. 

    사업영역을 급속도로 확대하고 있었던 한보그룹은 구룡마을 개발을 추진했지만 1991년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사건'이 터지면서 전면 백지화됐다.

    이후 몇년간 구룡마을 재개발은 동력을 잃고 표류하다 1996년 부동산개발업체인 중원이 토지매입에 나서면서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중원의 대표 정모씨는 1000억원 상당의 토지를 사들였고 아파트 입주권과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약속하며 마을주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2003년에는 군인공제회로부터 650억원을 투자유치하는 등 개발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민간개발 바람이 불자 돈냄새를 맡은 투기꾼들이 마을에 급속도로 유입됐다. 이들은 마을에 직접 거주하지 않고 대리인을 마을에 살게 하면서 입주권 취득을 노렸다. 

    마을주민들은 외부인 유입을 막기 위해 자경단을 조직하는 등 마을 안팎 곳곳에서 분쟁이 촉발됐다.  

    판이 커지자 대형건설사인 포스코건설도 뛰어들었다. 포스코건설은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를 설립한 뒤 앞서 토지를 매입했던 중원의 사업권과 채무를 양수해 시행, 시공을 동시에 나서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후 사업은 순항하는듯 했지만 2010년 취임한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SH공사를 통한 공영개발 적합하다는 서울시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그동안 사업을 추진했던 중원, 포스코건설, 토지주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서울시는 민간개발로 진행할 경우 각종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는 명목 아래 공영개발을 추진했다. 2012년에는 공영개발 방식을 확정하고 구룡마을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어진 서울시와 강남구청의 대립으로 사업은 진척되지 못했다. 

    2013년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업비 등을 고려해 토지주에게 땅으로 보상하는 환지방식을 일부 도입하기로 했는데 여기에 강남구청이 반기를 들었다. 

    강남구청은 서울시가 주장하는 방식을 적용할 경우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이 개발이익을 독점할 수 있다며 100% 수용방식을 주장해왔다.

    이 사안은 그해 국정감사장에 올라와 여야간 공방을 야기했고 서울시와 강남구는 서로 감사원에 맞감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과정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계획 변경 자체는 무효가 아니다'며 애매모호한 감사 결과를 내놨고 결국 갈등을 봉합되지 않았다. 

    양 지자체간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2014년 8월 개발지구가 해제됐고 구룡마을 개발사업은 사실상 무산됐다.

    하지만 그해 11월 한명이 숨지고 136명의 이재민이 나오는 대형화재가 발생하면서 개발사업 논의는 다시 급물살을 탔다. 2014년 서울시는 강남구청의 전면 수용방식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2016년에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개포구룡마을 도시개발구역 지정 및 개발계획 수립안'을 수정 가결했다. 

    하지만 사업은 2022년 10월 현재까지 아직 제자리걸음인 상태다. 지자체간 갈등이 해결되자 이번에는 주민들이 보상방식을 두고 집단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마을 거주민에게 재계약 가능한 임대주택을 공급함으로써 주거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존 마을에 거주했던 1100여가구중 이 방안에 찬성하는 400여가구는 SH공사가 제공하는 임시 거주지인 임대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겼다. 

    마을에 남은 700여가구의 주민들은 임대료가 나가지 않는 내집, 즉 마을에 지어질 아파트의 분양권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현행 토지보상법에 따라 마을내 지어진 무하건축물의 경우 이주대책 대상자가 아니므로 분양권을 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는 구룡마을이 위치한 강남구 개포동 567-1 일대 26만6304㎡ 규모의 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4000가구 조성할 계획이다. 당초 분양 1731가구와 공공임대주택 1107가구 등 총 2838가구를 건립할 계획이었지만 계획을 바꿔 분양 가구를 없애고 공공임대주택만 짓기로 했다.

    올해 착공에 들어가 2025년까지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지만 마을 주민들과 서울시 간 입장 차이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사업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