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달러 콜옵션 포기 후폭풍글로벌 채권시장서 신뢰도 급락당장 내년 만기12억달러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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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사들이 가장 유효한 자본확충 수단을 잃을 처지다.

    전날인 2일 흥국생명이 "5억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조기상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힌데 따른 후폭풍이다.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금리 상승으로 인해 차환을 위한 채권 발행에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자산건전성 규제인 지급여력(RBC)비율을 관리하기 위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는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지난 수 년 간 지속해 왔다. 저금리 상황에선 영구채로 취급받는 신종자본증권의 평가이익이 증가하기 때문에 RBC비율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신종자본증권의 평가이익이 고금리 시기엔 손실로 바뀐다는 점이다. 흥국생명의 경우 지난 6월말 기준 RBC비율이 157.8%로 금융당국의 권고치(150%)를 겨우 넘겼다.

    RBC비율 관리를 위해 신종자본증권을 새로 발행하는 것이 고금리 시기인 현재엔 오히려 불리하고, 기존 저금리 시기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을 지금 갚는 것 또한 흥국생명 입장에선 더더욱 불리하다.       

    흥국생명이 시장에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려면 최소 9% 이상의 금리를 제시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발행 조건상 '스텝업(금리 상향 조정)'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실제로 기존 4.475% 수준인 금리는 스텝업 후 6.75%(미국채 5년물 금리+2.472%) 수준이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는 영구채라는 점에서 이번 콜옵션 미행사는 원칙적으론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글로벌 채권시장에선 신종자본증권에 부여된 첫 콜옵션 행사 시점을 사실상 만기로 보는 것이 관행으로 여겨지고 있어 흥국생명이 시장의 플레이어들 간 신뢰를 깼다고 보는 시각이 대다수다.

    금융권에서는 흥국생명이 레고랜드 사태로 불이 난 국내 채권시장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물론이고, 해외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신종자본증권을 통한 자금조달에 당분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같은 업권인 보험사들은 전전긍긍이다. 

    국내 보험사가 지난 2017년~2018년 중 해외 채권시장에서 발행한 외화 신종자본증권은 총 22억 달러 규모. 이 중 내년 콜옵션 행사 시기가 도래하는 금액만도 12억달러에 달한다.

    한화생명이 2018년 4월 발행한 10억 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 시기가 내년 4월로 잡혔고  KDB생명의 2억달러는 내년 5월이다. 

    한화생명은 최근 3분기 실적발표에서 내년 4월 콜옵션를 행사하겠다고 밝힌 반면, KDB생명 측은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비판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흥국생명은 채권 발행 당시의 당사자 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란 설명이다. 

    당국 관계자는 "흥국생명의 수익성 등 경영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흥국생명 자체의 채무불이행은 문제되지 않는 상황이며, 기관투자자들과 지속 소통 중에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권에선 흥국생명의 이기적인 판단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자기 회사만의 이익을 위해 다른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수 년 간 쌓아올린 평판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셈"이라며 "시장의 신뢰를 되돌리기까지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