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수요 둔화 여파… 에틸렌 손익분기점 밑돌아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재편 통해 사상 최대 실적업계, 배터리 소재 등 비화학 사업 확대 속도
  • ▲ 금호석유화학 울산 고무공장. ⓒ금호석유화학 제공
    ▲ 금호석유화학 울산 고무공장. ⓒ금호석유화학 제공
    지난해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화학 사업에서 부진한 실적을 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및 글로벌 수요 둔화 여파다. 업황 침체가 올 상반기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기업들은 비화학 사업 비중을 늘리는 등 사업구조 다변화에 주력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화학 사업 비중이 큰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연결 영업손실 7584억원을 기록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연간 적자는 2012년 공식 출범 이후 처음이다. 첨단소재를 제외한 기초소재, 자회사 롯데케미칼 타이탄, 미국법인 LC USA 등 대부분 사업부가 적자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화학 사업 위주인 금호석유화학도 실적이 반 토막 났다. 영업이익은 1조1473억원으로 전년보다 52.3% 감소했다. 특히 전방 산업인 가전의 수요 부진으로 합성수지 제품 수익성이 나빠졌다.

    LG화학은 배터리 등 신산업 성장세에 힘입어 처음 연간 매출 50조원을 돌파했으나 석유화학 시황 악화로 수익성이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2조995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4% 줄었다.

    유일하게 웃은 건 한화솔루션이다. 전날 한화솔루션은 매출 13조6539억원, 영업이익 9662억원을 각각 기록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고 밝혔다. 화학 부문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절반 가량 급감했지만, 신재생에너지 부문의 급성장이 실적을 뒷받침했다. 

    신재생에너지 부문은 매출이 전년 대비 56.0% 증가한 5조5685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이 3501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이전 오랜 기간 적자를 겪었지만, 전 세계적 에너지 대란과 탄소 중립 가속화에 따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태양광 발전 수요에 우호적 환경이 조성돼 태양광 모듈 판매가 급증했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어려움을 겪은 주원인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수요 둔화다. 유가 상승으로 나프타 가격은 크게 올랐지만,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로 제품가가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과 함께 초유의 고유가 현상이 지속됐다”며 “공급과잉(중국 중심), 세계적 수요 둔화가 겹쳐 어느 때보다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석유화학기업의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지난달 넷째 주 t당 62 달러로 손익분기점인 t당 300 달러를 크게 밑돌았다. 제품을 판매할수록 손실을 본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국내 업체들은 최근 NCC(나프타분해시설) 가동률을 70%대로 낮췄다. 현 에틸렌 스프레드를 고려하면 추가 인하가 필요하지만, 일정 비율 이하로 낮추면 재가동 시 비용 부담이 커져 현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전망도 별로 밝지 않다.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도 화학 업황은 누적된 증설 영향과 경기 둔화로 부진이 계속될 전망"이라며 "다만 가동률 조정, 중국 방역 조치 완화 등을 고려하면 스프레드는 저점을 통과해 완만한 회복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고부가 제품과 사업 다각화로 현 위기를 극복한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은 기존 화학제품의 저탄소화, 고부가 사업을 강화하고 첨단소재와 생명과학 등 비화학 분야에 주력한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 확보를 최우선으로 삼고 자체조달 공급망 구축에 나설 예정이다. 최근 인수한 미국 항암제 전문 기업 아베오(AVEO)를 통한 글로벌 사업 시너지 극대화(2023년 매출 1조2000억원 전망)도 기대한다. 

    롯데케미칼은 올 1분기 중 글로벌 동박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동박이란 구리를 종이처럼 얇게 만든 제품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음극재를 만드는 데 쓰인다. 해당 인수를 통해 매출이 1조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수소-배터리-친환경제품 등 미래 신사업의 지속 투자 및 가시화를 통해 그린에너지-스페셜티 소재에 힘을 싣는다.

    금호석유화학은 SSBR로 대표되는 타이어용 고형 합성고무와 라텍스 제품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다. 또 합성수지 사업의 판매지역 다변화, 추후 시장 확대를 앞둔 나노튜브(CNT)의 제품 경쟁력 확보를 중점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CNT는 탄소 기반 차세대 신소재로, 철강의 100배에 달하는 강도를 갖췄다. 전기차 배터리와 면상발열체 등 다양한 사업에 활용된다. 금호석유화학은 시장 성장에 대비해 CNT 생산능력을 2024년까지 연산 360t까지 늘릴 계획이다.

    한화솔루션은 역시 태양광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 따라 미국 태양광 시장 확대가 기대되는 만큼 올해 처음으로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학철 한국석유화학협회 회장(LG화학 부회장)은 지난달 12일 '석유화학업계 신년 인사회'에서 "금년에도 산업여건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나, 기초 체력을 튼튼히 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재 당면 과제인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처해, 탄소중립 시대를 앞당기고 친환경 분야에서 내실을 착실히 다져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