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화상으로 첫 본회의 진행…한·미·일·대만 4자 한자리에미·동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관련 원론적 담화 오가…美 보조금 조건·가드레일 조항 언급 안해독소조항 가득한 보조금에 기업들 시름…칩4서 추가 압박 나올 가능성에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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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급하는 수조 원 규모 보조금에 사실상 독소조항을 포함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주도로 추진되는 '칩(Chip4)' 동맹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또 하나의 족쇄가 될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다. 칩4는 한국과 미국, 일본, 대만 등 4개국이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협력한다는 취지로 최근 본회의에 들어갔다.

    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반도체과학법(칩스법) 보조금 지급 기준 및 계획을 두고 국내 반도체업계에게 불리한 독소조항이 대거 포함된 가운데 미국 주도로 추진되는 반도체 공급망 동맹인 '칩4'에서도 추가적인 압박이 제시될 가능성에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칩4 동맹은 지난해 미국의 제안으로 일본과 대만이 참여 의사를 밝힌 가운데 명확하게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던 우리나라도 사실상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외교부는 미국과 일본, 대만 측과 처음으로 화상회의 방식으로 열린 칩4 본회의에 참석했다.

    이날 열린 회의는 한 시간 남짓 진행됐고 반도체 공급망 강화 방안과 관련한 원론적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첫 본회의인데다 화상으로 열린 점을 감안해 기본적인 공통 주제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상무부가 보조금 지급 기준과 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이 칩4 회의가 개최되면서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투자 규제나 반도체 지원법 가드레일 조항 관련 논란은 논의되지 않았다. 칩4에서는 4자 간 협력 방안이나 전체 반도체 시장 공급망 이슈와 관련한 사안들만 다루고 나머지 이슈는 개별 사안으로 별도 채널을 두고 미국 측과 소통한다는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반도체업계 발등에 떨어진 불은 미국 정부가 제시한 반도체 투자 보조금을 받기 위해 예상 밖의 독소조항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여부다. 여러 단서 조항 중에서도 미국 반도체 시설에서 발생한 추가 이익에 대해 지급받은 보조금의 최대 75% 수준까지 환수될 수 있다고 명시한 '추가이익공유제'와 미국 국방부 등에 안보 상 필요에 따라 반도체 생산시설을 공개하고 일부 사용할 수 있게끔 개방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이 무리한 요구로 지적되고 있다. 반도체 공장 자체가 기밀인 기업 입장에선 기술이나 기밀 유출 리스크가 생기는 셈이다.

    그렇다고 수조 원에 달하는 미국 측 보조금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딜레마다.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2조 원) 규모의 파운드리 신공장 건설에 들어간 상태고 여기에 향후 20년 간 추가로 11개의 반도체 생산공장을 신설하며 거의 2000억 달러(약 260조 원)를 쏟아붓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도 미국 내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과 연구·개발(R&D) 기지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혀 미국 투자에 동참했는데 보조금을 받게 되면 동시에 여러 독소조항의 영향을 받게 된다.

    여기에 아직 발표되지 않은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까지 더해지면 한국 반도체가 미국에서 투자하고 생산해 얻는 실익이 있을지 조차 미지수다. 이달 중 발표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드레일 조항은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향후 10년 간 중국 등 우려국가에 반도체 관련 투자와 생산설비 증설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내 외엔 가장 큰 반도체 생산기지를 중국에 두고 있는 삼성과 SK 입장에선 이 가드레일 조항이 더 큰 독소조항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정부는 국내 기업들이 이번 미국 상무부의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보게 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율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그 효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이미 발표된 보조금 조건을 완화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우세하고 그나마 아직 발표되지 않은 가드레일 조항에서 국내 기업들에 극심하게 불리한 부분을 소폭 완화하는 수준에서 협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칩4까지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면서 이미 어쩔 수 없이 독소조항을 품고 보조금을 지급받아 미국에서 생산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국내 기업들에겐 도움은 안되고 요구사항만 늘리는 또 다른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만 나오는 것이다.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우리 기업들의 이해타산에는 맞지 않는 단체 조약을 맺고 억지로 이행에 나서야할 가능성에 더불어 앞으로도 생산을 이어가야 하는 중국 측에 적대적 행보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이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당장 메모리 반도체 품목 별로 생산 비중이 40%를 넘어가기도 하는 핵심 기지인데 자의반 타의반 칩4 동맹에 참여하면서 얻게 되는 이득이 무엇인지는 가늠이 안된다"며 "미국이 보조금과 패권을 무기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칩4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또 어떤 다른 요구에 나설지 두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