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회복청구'… 4대 '장자' 승계 흔들행동주의 펀드 A자산운용사, 세 모녀와 '연합전선' 백기사 모집 물밑 작업… 경영권 분쟁 확대 가능성 구광모 회장 '발등에 불'… 소송 장기화 앞서 '합의' 절실
  • 구광모 LG 회장 ⓒLG
    ▲ 구광모 LG 회장 ⓒLG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고(故) 구본무 전 회장의 배우자와 두 딸이 뒤늦게 상속회복청구 소송에 나선 데 행동주의 펀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4대에 걸쳐 장자 승계가 안정적으로 이뤄진 LG가에 여성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점을 활용해 경영권 분쟁에 불을 붙였다.

    15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로 이름을 알린 A자산운용사는 LG가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에 주목해 구본무 전 회장의 배우자인 김영식 여사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 등 두 딸과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이 펀드는 최근 금융투자업계 다른 운용사들을 대상으로 우군 확보에 나서며 본격 활동을 개시했다.

    구 전 회장이 타계하고 상속 절차가 완료된지 이미 4년이 넘은 상황에서 세 모녀가 뒤늦게 구 회장을 대상으로 소송을 청구한 것을 두고 재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오갔다. 게다가 통상 상속 재산을 두고 벌이는 소송은 유류분 반환에 해당하지만 이번에 세 모녀는 상속회복청구 소송이라는 방법으로 구 회장을 공격해 눈길을 끌었다.

    일단 세 모녀는 유류분 반환 소송에 나설 수 있는 제척기간(3년)이 지난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속회복청구 소송은 침해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안에 행사가 가능해 기간적으로 가능한 이 방법을 택했을 것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법조계에선 세 모녀가 구 회장에 제기한 이번 소(訴)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크다. 상속회복 청구 소송은 상속인이 아닌 사람이 고의로 상속 재산을 점유하거나 상속결격자가 상속인이 되는 경우를 문제삼는 것인데, 결국 세 모녀 측이 구 회장이 상속권이 없는 이른 바 '참칭상속인'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상속을 위한 합의에서 위법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난제라는게 법조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게다가 세 모녀가 승소해 법정 기준대로 재상속이 이뤄지더라도 LG그룹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승소할 경우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각각 1.5대 1의 비율로 ㈜LG 지분 상속이 이뤄지게 되고 김 여사는 4.2%의 지분율이 7.96%로, 구 대표는 2.92%에서 3.42%로, 연수 씨는 0.72%에서 2.72%로 높아진다. 구 회장은 현재 15.95% 지분율에서 9.7%로 낮아진다.

    세 모녀의 합산 지분이 14.09%로 구 회장을 넘어설 수는 있다. 하지만 지난 75년 넘게 장자승계 원칙을 지켜왔던 LG그룹의 남아있는 친인척들, 특히 집안 어른들이 구 회장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높아 집안이 반으로 쪼개져 지분 다툼을 하게 될 수 있다. 구 회장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지분율 3.05%)과 구본식 LT그룹 회장(4.48%), 구본준 LX그룹 회장(2.04%) 등 ㈜LG 지분율이 높은 주요 어른들만 구 회장 손을 들어줘도 지분은 배로 늘어난다. 세 모녀가 이런 방식으로 지분 싸움에 나서는 것 자체가 승산이 없다는 의미다.
  • 결국 세 모녀에겐 향후 지분싸움으로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구 회장과 집안을 이길 수 있는 든든한 백기사가 절대적이다. 최근 기업 경영에서 주주행동주의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행동주의 헤지펀드(Activist)에게도 이런 오너일가의 경영권 다툼은 참여에 빌미를 주는 좋은 기회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행동주의 펀드가 세 모녀 측 특히 구연경 대표와 적극적으로 접촉해 구 회장에 맞설 방안을 제시하고 행동을 촉구했을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세 모녀가 일찌감치부터 경영과 상속에서 배제돼 불만이 있었고 구 회장과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구 대표의 남편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이번 소송과 경영권 분쟁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직접적으로 연결짓기엔 무리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다만 윤 대표가 금융투자업계에 오랜 기간 종사를 해오고 있는만큼 그의 처가인 LG가 내부 사정에 대해서 업계에 알려진 바가 커서 행동주의 펀드 측이 보다 쉽게 구 대표 측에 접근해 제안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 대표도 제안을 더 쉽게 신뢰했을 수 있다.

    백기사의 등장으로 세 모녀 측은 사실상 경영권 분쟁까지 염두에 두고 이번 소송을 진행한다고 볼 수 있다. 경영에 나선 경험이 적고 오랜기간 주부로만 살아왔던 이들이지만 구 회장 체제를 순식간에 뒤흔들 수 있는 존재로 부상한 것이다. 

    이제 막 소송을 시작한 상황이고 우선은 양측이 합의에 주력할 것이라는게 중론이지만 소송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이 이어질 수 있다. 75년간 지켜온 가풍을 훼손한다는 오명을 쓰는 상황에서 우선 구 회장은 적극적으로 합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세 모녀 측도 긴 소송전을 치루기 보다는 좋은 조건으로 구 회장과 합의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가 이 상황에 개입된 이상 올 한해 동안 LG 사상 최초로 경영권을 두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최악의 경우도 배제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