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출자자·최고직위자 등 동일인 지정지침 5개 제시한진 조원태 3개·현대차 정의선 4개·LS 구자은 5개 충족쿠팡-OCI 형평성 논란… "통상마찰 우려에 지정 못해"공정위 "산업부와 협의·추진" vs 산업부 "논의 중인 것 없어"
  • ▲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동일인(총수) 지정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했지만, 외국국적의 동일인은 여전히 지정하지 못하고 있어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공정위는 29일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 제정안을 마련하고 그동안 공정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던 동일인 지정 기준을 명문화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국적에 대한 판단 여부는 지침에서 빠져있어 쿠팡 김범석 이사회 의장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제정안을 보면 동일인 판단 기준은 △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기업집단의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 △기업집단 내·외부에서 대표로 인식되는 자 △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이다.

    공정위 기준을 따르면 네이버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회장은 최다출자자, 최고직위자, 경영 지배력 행사,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 등 4개 기준을 충족한다. 한진의 경우 조원태 회장이 최고직위자, 경영 지배력 행사,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 등 3개 기준을 충족한다. LS의 구자은 회장은 5개 기준을 모두 충족한다.

    공정위는 쿠팡 김범석 의장에 대해 5개 기준을 적용한다면 최다출자자, 경영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 대표로 인식되는 자 등 3개 기준을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동일인 지정 판단 기준에는 내국인 여부가 없기 때문에, 이 기준대로라면 김 의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김 의장은 여전히 동일인 지정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난 4월 말 공정위가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지정할 때 쿠팡은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이유는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전 시행된 실무회의에서 외국인 동일인 지정을 반대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이 같은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하면서 김 의장에 대한 동일인 지정이 어려워졌다.
  • ▲ 한기정 공정위원장 ⓒ연합뉴스
    ▲ 한기정 공정위원장 ⓒ연합뉴스
    공정위는 산업부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통상 마찰 우려를 해소하는 방안을 찾고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한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형평성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산업화학 전문업체 OCI의 동일인인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도 미국 국적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됐지만, 같은 미국 국적인 김 의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아 의문이 제기됐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이 회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된 이후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쿠팡은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이날 마련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이 회장은 경영상 지배력 행사, 기업집단 대표자로 인식 등 2개 기준을 충족한다. 이 회장보다 1개 더 많은 3개 기준을 충족한 김 의장이 동일인 지정을 회피할만한 명분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통상 마찰 이슈 때문에 쿠팡은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못했지만,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산업부 등과 긴밀하게 협의하겠다"며 "이것이 국정과제이고 올해 업무과제라는 점을 공정위가 잘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와 관련해선 "공정위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아, 미국 정부가 산업부에 이의를 제기한 부분은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결국 키는 미국과의 협의를 주도하는 산업부가 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산업부는 지난해 5월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자유무역협정(FTA) 최혜국 대우 조항을 위반할 우려가 있다는 미국 정부의 항의 이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태도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최근 미국과 특별히 오가는 얘기는 없다"며 "이미 공정위가 쿠팡의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해놓은 데다, 특별한 이슈가 있는 사안도 아니기 때문에 공정위와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