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드 악화 주요인 '기업용 수요 침체'… AI 투자 탓 뒷전"기업용 가능성 투자했는데"… 회복 요원, 인수효과 없어올 상반기만 2조2천억 손실… HBM 실적 신기록 예고 '무색'
  • ▲ ⓒSK하이닉스
    ▲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 업황 악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특히 데이터센터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분야가 직격탄을 맞았다. 가뜩이나 솔리다임(옛 인텔 낸드사업) 인수 직후 낸드시장이 얼어붙었는데 주력인 기업용 SSD 분야가 끝을 알 수 없는 수요 침체에 직면하면서 적어도 내년까진 대규모 적자와 재고를 떠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17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최근 인공지능(AI) 서버시장이 급성장하며 글로벌 빅테크들이 앞다퉈 관련 투자에 나서면서 기존에 운영하던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투자에 제동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적으로 기업용 SSD 시장이 침체를 면치 못하면서 낸드시장 업황 악화를 가속화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수요가 줄면서 기업용 SSD 가격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2분기 기업용 SSD 가격이 13~18% 떨어지고 3분기에도 5~10% 가량 하락세를 이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올 1분기에도 가격은 평균 15% 가량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매 분기 재차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 하락이 이어지는 셈이다.

    3분기엔 중국 정부기관들과 통신 사업자들이 신규 주문에 나설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만 그마저도 이미 바닥을 넘어선 가격 때문에 수익 측면으론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이미 기업용 SSD 제품 상당수가 원가 이하 수준으로 가격이 형성돼있고 제품을 팔면 적자가 나는 구조라 신규 고객과의 협상에서도 마진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쌓여있는 재고를 감안해서라도 수요 유치에 나설 수 밖에 없다.

    주요 제조사들이 이미 낸드 감산에 나선지 오래지만 감산 효과가 무색한 수준으로 수요가 되살아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일단 올 하반기부터는 감산 효과가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게 업계의 예상이고 가격 하락폭도 5~10%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 하반기까지 적어도 1년은 더 수요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 ▲ 솔리다임이 지난 7월 출시한 기업용 SSD 'D5-P5336' ⓒ솔리다임
    ▲ 솔리다임이 지난 7월 출시한 기업용 SSD 'D5-P5336' ⓒ솔리다임
    낸드시장 악화 중에도 기업용 SSD가 이처럼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 시장에 강점을 가졌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솔리다임을 인수한 SK하이닉스의 고통도 깊어지고 있다. 인수 전 인텔 낸드사업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 독보적 1위인 인텔이 CPU와 함께 서버용 SSD를 함께 판매하면서 성장해왔는데, 그런 까닭에 상대적으로 모바일이나 소비자향 제품 등에선 존재감이 미미하고 최근 시장 악화 여파를 솔리다임이 고스란히 맞고 있다.

    솔리다임에 해당하는 'SK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SK hynix NAND Product Solutions Corp.)' 법인과 그 종속회사들은 올 상반기에만 2조 2400억 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조 27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했을 정도로 영업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여기에 원가 이하 수준으로 제품 가격이 떨어지면서 손실 규모가 매출액의 두배 수준 가까이 커진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솔리다임을 통한 손실만 누적 5조 6000억 원이 넘어가는 상황이다. 지난해에도 연간 기준 3조 3300억 원 가량의 손실이 발생해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낸드 시장, 그 중에서도 솔리다임 주력 분야인 기업용 SSD에 타격이 이어지며 솔리다임 인수가 적절했는지 여부가 다시 도마에 오르는 모양새다.

    설상가상으로 솔리다임이 새롭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쿼드러플레벨셀(QLC) 기반 데이터센터용 SSD도 속절 없는 가격 추락에 회복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솔리다임은 지난달 데이터센터용 QLC SSD 가운데 가장 용량이 큰 'D5-P5336'을 출시했다. 문제는 이 QLC 기반 SSD가 원래도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제품으로, 기존 주력제품인 TLC(트리플레벨셀)보다 가격 하락 국면에 더 취약한 제품이라는 점이다. TLC보다 용량도 크고 일부 읽기 성능에선 더 능가하는 제품을 출시했다고는 하지만 시장에선 이미 TLC도 가격이 상당히 낮고 제품 안정성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더 낮은 가격의 QLC를 선보이기에 적합하지 않은 시점이라는 지적이 있다.

    현재 솔리다임은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장과 데이비드 딕슨 솔리다임 부문장을 신규 각자대표이사로 선임해 운영되고 있다. 노 사장은 솔리다임 인수 주역으로 꼽히는 인물로, 초기 대표이사가 사임한 이후 본격적인 시너지 창출을 위해 솔리다임 경영을 직접 맡았다.

    이처럼 솔리다임이 본격적인 인수 후 통합 작업이 마무리 되기 전부터 수조 원대의 손실을 떠안은데다 주력인 기업용 SSD 시장이 AI 투자에 밀려 수요 회복에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전례없는 실적 기록을 세울 것이라는 모회사 SK하이닉스의 기대감도 한 풀 꺾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