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메모리 기술 독보적이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서 뒤처져""시스템반도체 육성, 개별 기업 넘어 정부 관심-지원 절실"'칩렛' 기술 수율 높고 단가 낮아 각광… 인력 양성 세분화 필요"韓, 中 반도체 투자 사실상 불가능… 中 반도체 굴기 공정 개발 집중"
  • ▲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뉴데일리DB
    ▲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뉴데일리DB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반도체 산업에 위기론이 고조되고 있다. 갈수록 심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전쟁으로 한국 기업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처지 처지에 놓인데다 후발 주자들의 추격까지 받고 있다. 

    미래 먹리로 점찍은 시스템 반도체 주도권 확보에도 경고등이 들어온 상태다. 인텔, 라피더스, TSMC 등 경쟁 기업이 자국 정부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덩치를 키우고 영역 확대에 발빠르게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위기를 넘어 미래도 담보하기 어려운 현실에 처한 것이다. 

    여기에 업황 불황까지 겹치며 이런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수출은 지난 1년간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전 세계 수출 비중도 이미 연속 4년에 걸쳐 20% 이하로 떨어지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이 전 세계 반도체산업에서 우월적 지위를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본지는 지난달 26일 한국전자기술연구원에서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한국전자기술연구원 부원장)과 만나 반도체산업 강화를 위한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반도체공학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만 다루는 전문학회로 지난 2017년 9월에 설립됐다. 반도체공학회는 연구발표, 강습회, 토론회 등 학술대회를 주관하고 학술간행물도 발행한다. 다양한 논문 공개 및 기업과의 협력 등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규복 회장은 개별 기업을 넘어 정부, 학계 등이 함께 '원팀'으로 뛰며 메모리 중심의 국내 반도체 가치사슬을 시스템 반도체 및 소부장(소재·부품·장비)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반도체는 글로벌 국가들이 안보 핵심 무기이자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기업이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세계점유율 3.3%에 불과한 시스템 반도체 육성은 범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이 회장은 "메모리 반도체는 아직도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은 글로벌 최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걱정은 없지만 문제는 시스템 반도체"라며 "시스템 반도체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비중이 70%에 달하는데 한국은 3.3%의 점유율에 불과해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시스템 반도체는 IT 분야는 물론 자동차·에너지·의료·환경 등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이 예상돼 영역이 넓다"며 "민간 기업의 경우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시장 개척에 나서고 정부는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한국 반도체의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파운드리에서 대만 TSMC가 독보적인 이유는 미세공정 등 기술력을 논하기에 앞서 낮은 사양 제품부터 높은 사양 제품까지 설계자산(IP) 업체들의 주문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팹리스부터 파운드리, 패키징 등 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 회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7월 용인·평택을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거점 조성'을 위한 특화단지로 지정했다. 현재 이 지역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기업이 562조 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계획한 상태다. 정부는 이를 이천·화성 생산단지와 연계해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이 회장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미세공정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으로 후공정 ‘칩렛(Chiplets) 기술을 주목했다. 최근 TSMC와 삼성전자가 초미세 공정인 3나노 양산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인텔이 내년 1분기부터 1.8나노 제품을 내놓겠다고 발표하면서 미세공정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은 실리콘 웨이퍼 원판에 회로 패턴을 새기는 전공정과 패키징·테스트로 이뤄진 후공정으로 나뉜다. 패키징은 제조된 반도체를 기판이나 전자기기 등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도록 포장하는 과정이며 테스트는 반도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미세공정 경쟁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미세공정을 추가로 전개할수록 전공정 중에서 노광 공정에 대한 설비투자 부담이 커지고 공정 과정이 복잡하다. 또한 수율과 단가도 경쟁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후공정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 ▲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뉴데일리DB
    ▲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뉴데일리DB
    이 가운데 떠오르고 있는 기술이 '칩렛'이다. '칩렛'이란 시스템 반도체의 구성을 하나의 반도체로 생산하는 것이 아닌 여러 모듈로 분할 생산한 다음 하나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각 칩마다 최적의 공정을 적용할 수 있어 단가 절감과 높은 수율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 회장은 "하나의 웨이퍼에 칩을 따로따로 생산 가능하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으며 기술개발 및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버리는 웨이퍼 공간이 적어 수율이 높아져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또 반도체 인력 부족과 관련해서는 반도체 특성화 대학 등 정부와 기업의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인력 확보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 특성화 대학 등을 통해 인력 양성은 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공정도 있지만 소프트웨어를 통해 설계를 보완해 주고 공정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인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국내 기업들은 이런 부분을 절실히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공정 기술에 대한 인력도 중요하지만 미세한 부분에서 인력 양성도 세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반도체 경기가 올해 연말 바닥을 찍을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의 감산 효과와 함께 수요 회복으로 내년부터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 업황은 올해 말 바닥을 찍고 내년부터 개선될 것"이라며 "삼성이 감산한 효과들이 나오고 있고 데이터, 자율주행차 등 수요는 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다음은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미·중 반도체 갈등에 따른 우리 기업들의 영향과 전망은.

    ▲미국의 반도체법으로 국내 기업의 투자는 앞으로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중국에서 생산되는 제품 수출에도 부정적이어서 고민이 된다. 하지만 미국이 지금과 같이 강경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내 기업들은 첨단 기술력 개발은 국내에서 진행하고 해외 거점은 필요한 라인만 구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뒤처져 있다. 국내의 경우 기술력은 있지만 기업간 경쟁이 심화된 문제가 있다.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국내 공급망을 구축하고 전방산업까지 연계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은 적절한 것 같다. 

    -한국과 대만을 중심으로 초미세화 공정이 한계 수준까지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 대비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1나노 제품을 생산해도 수율과 단가는 계속 문제가 될 것이다. 때문에 패키징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기술이 '칩렛' 기술이다. 블록별로 칩을 따로 생산 가능해 단가 절감과 높은 수율을 확보할 수 있다. 1나노 및 그 이하까지 기술을 확보 못 해도 이런 패키징 기술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대만 기업에서 관련 기술을 적용하고 있고 다른 반도체 기업들도 기술개발 및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화웨이의 7나노 칩 사용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지속되고 있는데.

    ▲중국이 7나노를 개발했다고 무조건 믿기는 어렵다. 현재 중국이 가지고 있는 장비로는 14나노 생산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규모 투자는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보면 공정 개발에 투자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설계 기술도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공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개발하려고 상당한 노력을 많이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의 규제로 제동에 걸렸지만 막대한 자금을 통해 M&A(인수합병) 및 인력 확보가 가능해 기술력을 올리는 작업은 충분히 가능하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1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반등 시기는 언제쯤 가능한지.

    ▲전반적인 업황을 보면 올해 연말 바닥을 찍고 조금씩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감산 효과가 나오고 있는 상태고 전기차 및 데이터센터 등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화두인 HBM을 국내 기업들이 양분하고 있는데, 향후 수요는 어떻게 보시는지.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기술이 요구되면서 HBM 시장 수요도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국내 기업들도 본격적인 공략이 예상된다. 앞으로 국내 기업에 주요한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