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7년간 최저임금 인상률, 물가상승률의 4배 육박탈원전 후폭풍에 전기료 지각인상, 서비스업종 직격탄교과서에 없는 아마추어 정책이 물가·자영업자에 치명상 입혀
  • ▲ 스태그플레이션 삽화. ⓒ연합뉴스 제공
    ▲ 스태그플레이션 삽화. ⓒ연합뉴스 제공
    [편집자주] 현재의 고물가는 유가, 농식품 수급 등 외적 요인이 결합된 결과다. 하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더 큰 구조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경직된 주52시간제 강행 등 문재인 정부 당시 급격히 추진된 노동법 개악이 고임금 구조를 고착화했고, 그 부담이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 경제 전체의 고름으로 퍼져있다. 특히 자영업자를 비롯한 서비스업에서는 종업원들의 고임금 문제가 치명적 고통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른바 고임금발(發) 비용 인플레이션이다. 비용 인플레는 수급으로 생기는 물가보다 경제에 치명상을 안긴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의 폐해가 차곡차곡 쌓여 물가 급등의 불쏘시개가 되고, 정권이 바뀐 지금 훨씬 큰 후유증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세 차례에 걸쳐 고물가의 내재된 원인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해 본다.

    "최저임금 1만원이나 주 52시간 근무제를 경직되게 적용한 것이 부작용을 일으켰다." 진보 진영의 정책 전문가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실패 이유로 든 얘기다. 마치 반성문을 쓰듯 진영 내에서 문제 인식을 한 것이 주목할만하다.

    "임금인상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최대 위험요인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27%가 이렇게 답했다. 경제학계에선 물가가 임금상승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지, 임금이 물가의 위험요인이라고 보는 시각은 드물었다. 일반적인 인과 관계가 뒤바뀌었다.

    꺾이지 않는 물가 상승세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고자 시중에 돈을 과하게 풀었던 원인이 있지만 임금상승, 상품·서비스 가격 인상 등에 따른 '코스트 푸시'(cost-push), 주 52시간·탈(脫)원전 등 문재인 정부 당시 추진했던 무리한 정책 실험이 발단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3년 소비자물가지수는 111.6으로 7년 전인 2016년(95.8) 대비 16.5% 올랐다. 그런데 이 기간 최저임금은 6030원(2016년)에서 9620원(2023년)으로 7년 만에 59.5%(3830원)나 급등했다. 문 정부를 거치는 동안 최저임금 인상률(59.5%)이 물가상승률(16.5%)을 크게 웃돌았다. 

    문 정부 핵심 정책인 '소주성'의 견인차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었다. 매년 한 자릿수로 인상되던 최저임금은 2017년 6470원에서 2018년 7530원(16.4%), 2019년 8350원(10.9%)으로 2년 만에 약 30% 급등했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가 1.5%(2018년), 0.4%(2019년) 오르는 데 그쳤으니 물가가 최저임금을 올린 게 아니라 최저임금이 시차를 두고 물가를 끌어올린 게 명확해진다. 

    완만하던 소비자물가 흐름은 2021년 이후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1% 이내 상승폭을 보이던 소비자물가는 2021년 2월 1.4%로 오르더니 5월에는 2.6%, 11월에는 3.8%까지 치고 올라갔다. 액셀러레이터 밟듯 2022년 5월 5.4%, 7월 6.3%까지 치솟아 외환위기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최저임금 직격탄을 맞은 외식물가는 서서히 올라 결국 9.0%(2022년 9월)까지 급등하며 30년 만에 최고를 찍었고, 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억눌렸던 전기요금은 29.4%(2023년 1월)까지 급등했다. 최근 농산물이 주도한 물가 상승과는 달리 당시 소득주도·최저임금 인상·탈원전 등 정책 실험 관련 품목들이 물가 상승을 견인했던 것이다.

    특히 외식물가 상승은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뿐 아니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도 한몫했다. 안 그래도 인건비가 늘어나고 있던 와중에 주52시간 규제로 임금 부담을 키웠다. 근무 시간이 짧아지는 만큼, 범법자가 되지 않으려고 직원을 늘려야 했던 업종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제 강행 등의 노동 규제가 당장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은 이코노미스트마다 엇갈린다. 다만 높아진 임금이 상품·서비스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후유증이 물가·고용 등 경제 전반에 타격을 가한다는 명제를 부정하는 이는 드물다.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주목할만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음식점 및 도소매업, 농림수산식품 등을 중심으로 한 고용주의 인건비 부담 증가, 이를 완화하기 위한 비용을 제품·서비스 가격에 전가할 때 물가 상승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를 집필한 신유란 연구원은 "최저임금 근로자나 영세사업자 비중이 높은 서비스업과 농어업 분야는 고용축소의 어려움에 따른 임금상승과 제품·서비스로의 가격 전가 영향이 크게 나타나고 물가 상승 압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라고 짚었다. 
  • ▲ 근로시간 단축 관련 삽화. ⓒ연합뉴스 제공
    ▲ 근로시간 단축 관련 삽화. ⓒ연합뉴스 제공
    주 52시간 근무제가 경영, 실적 등에 부정적이었다는 연구 보고서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주 52시간 근무제가 기업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 연구를 했더니 시행 시점인 2017년과 2019년의 고용증가율은 예상과 달리 0.67%포인트(p) 줄었고, 유의성은 떨어졌다. 

    보고서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기업의 총자산이익률은 0.82%p가 감소하고 자기자본이익률도 약 3.01%p가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라며 "주 52시간 근무제가 고용 증가율은 높이지 못하고 기업의 성과만 감소시키고 있어 제도개편을 통한 효율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보고서의 분석대로 인플레이션은 현실이 됐고 경기 침체의 골은 깊어졌다. 저금리에도 오랜 시간 '짖지 않던 개(The Dog That Didn't Bark)'로 경시했던 인플레는 월 기준 6%대까지 치솟아 우리 경제에 빨간불을 켰다. 지금까지도 물가상승률은 월 3%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끝 모를 '인플레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망실장은 "임금인상 등 코스트푸시 인플레이션에 대해 정확한 분석이 있어야 하겠지만, (물가상승에) 영향은 있다"라며 "원재료 상승 문제는 일시적이지만, 인건비는 한번 올리면 내리기 힘든 항구적이라 다시 또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단시간에 과하게 끌어올린 최저임금과 주52시간 강행 등 노동시간 규제로 인건비가 크게 올라 소상공인과 서비스업종을 짓누르면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경제 전반에 부작용을 초래한 결과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인플레가 동시에 나타나는 상태)' 공포 상황까지 야기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미 2022년에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판단했다. 2022년은 경제성장률이 2%대로 주저앉고 물가는 6%대로 급등했던 시점이다. 당시 한국경제학회가 국내 경제학자 39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54%는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진입 단계'라고, 5%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