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필수의료 붕괴의 핵심 이유로 실손보험 지목매년 보험료 두자릿수 인상에도 적자폭 전년대비 확대신규 비급여 항목 등장…개선됐던 손해율, 또다시 상승'돈벌이' 전락…"다수의 선량한 계약자 위해 제도 개선"
  •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에 대한 가입자와 의료계의 '도덕적 해이'로 또다시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에서도 '의료대란'의 원인 중 하나로 간주하고 비급여 과잉진료 방지를 위해 제도 개혁에 나섰다. 다만 기존 계약에 대한 소급적용 어려움 등으로 현실적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선량한 피해자를 막기 위해 과감하게 칼질을 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금이 실손의료보험 개혁의 골든타임이다. [편집자주]
  • ▲ 서울시내 한 병원. 230724 ⓒ뉴시스
    ▲ 서울시내 한 병원. 230724 ⓒ뉴시스
    # 실손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들은 가벼운 증상에도 병원을 찾는다. 의사들은 으레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필요 이상의 의료 서비스를 이것저것 추천한다. 비용을 제3자인 보험사가 처리해 주기 때문에 소비자와 의사 모두 '눈먼 돈'이라며 낭비하는 것이다. 이는 보험금 청구 증가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병원 진료를 자제하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병원비를 대신 내주는 교차보조 문제까지 일으킨다.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과 적자폭이 지난해 다시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계약 수 증가와 보험료 인상으로 수익은 늘었지만, 무릎줄기세포주사와 같은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계속 등장하면서 비급여 과잉진료로 인한 보험금이 증가한 탓이다. 

    '의료쇼핑'으로도 표현되는 비급여 과잉진료는 의료대란을 겪는 과정에서 '필수의료 기피현상'의 원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의료계와 함께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의 '2023년 실손의료보험 사업실적'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실손보험 보유계약은 3579만건으로, 전년 말 3565만건 대비 0.39%(14만건) 증가했으며 보험료수익은 같은 기간 13조1885억원에서 14조4429억원으로 9.51% 늘어났다.

    보험료수익은 계약 증가와 보험료 인상으로 증가했다. 앞서 보험업계는 누적된 실손보험 보험손익 적자를 반영해 평균보험료를 2021년 10.3%, 2022년 14.2% 등 2년 연속 두자릿수로 인상한 바 있다. 실손보험 보험손익은 △2019년 -2조5133억원 △2020년 -2조5009억원 △2021년 -2조8581억원 등 3년 동안 2조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보험료수익에서 발생손해액과 실제사업비 등을 뺀 보험손익은 지난해 1조9738억원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1조5301억원 대비 적자폭이 4437억원 증가한 것이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103%로 전년대비 2.1%p 증가했다. 손해율은 발생손해액이 보험료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100%를 초과하면 실손보험을 팔아서 보험사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에는 그 손해가 커진 셈이다. 

    ◇비급여 과잉진료 방지 노력에도 신규 비급여 항목 지속 출현…1년 만에 다시 적자

    실손보험의 손해율과 적자폭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였다가 백내장 등 비급여 과잉진료 방지를 위한 노력 덕분에 2022년 감소세를 기록했지만 1년 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실손보험 손해율과 보험사 손익에 악영향을 끼치는 비급여 과잉진료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비급여 항목으로 나간 실손보험금은 8조126억원으로 처음으로 8조원대를 넘어섰다. 전년 7조8587억원 대비 1.95% 증가했다. 비급여 항목에서도 코로나19 방역조치 완화 후 호흡기 질환 증가 등으로 비급여 주사료(28.9%)가 도수치료 등의 근골격계질환 치료(28.6%)를 제치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변화가 있었다.

    비급여주사의 경우 병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과잉진료 우려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은 그간 '부동의 1위'를 지켜오며 보험업계의 가장 큰 '골칫덩이'로 여겨진다. 두 항목에 들어간 비급여보험금만 4조6000억원(57.5%)에 달한다.

    이어 △질병치료 목적의 교정치료(3.1%) △재판매가능치료재료(2.0%) △하지정맥류(1.6%) 순이다. 백내장 삽입술은 2022년 대법원 판결의 영향으로 감소하면서 상위 5개 항목에서 빠졌다. 2021년과 2022년 3위를 차지했던 백내장 다초점렌즈 삽입술은 상위 5개 항목에서 빠졌다.

    김현중 금감원 보험상품제도팀장은 "2022년 백내장 대법원 판결 등으로 인해 다소 감소했던 비급여 지급보험금이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며 "무릎줄기세포주사 등 신규 비급여 항목이 계속 출현하는 등 전체 실손보험금 중 비급여가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 서울시내 한 성형외과. ⓒ연합뉴스
    ▲ 서울시내 한 성형외과. ⓒ연합뉴스
    ◇'돈벌이' 전락…의료공백은 물론 손해율 상승, 보험료 인상 부추겨

    일각에서는 실손보험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최근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료 사태에 일조한 측면도 있다고 보고 있다.

    실손보험에서 보장하는 비급여 진료비를 의사가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다 보니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는 일부 진료과 개원의의 소득은 다른 과에 비해 상당히 높다. 이에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돈 안 되는' 필수 과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필수의료 붕괴를 가속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수련병원 140곳을 대상으로 2024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전기 모집한 결과 필수의료 과목으로 꼽히는 응급의학과(79.6%), 산부인과(67.4%)는 지원율 100%를 넘기지 못했다.

    이에 반해 △정신건강의학과 178% △안과 172% △성형외과 165% △재활의학과 158% △정형외과 150% △피부과 143% △영상의학과 141% 등은 100%를 훌쩍 넘겼다.

    이에 따라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외면하고 저위험·고수익을 보장하는 비급여치료로 몰려 '의료공백 사태'는 물론, 과잉진료로 인한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 보험료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금융당국은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하는 의료개혁과 연계해 4세대 실손보험을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의료개혁 과제에는 병·의원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와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병행하는 경우 비급여 진료 내역을 함께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또한 실손보험 가입자와 보험사 간 양자계약인 실손보험 계약을 가입자와 보험사, 병·의원 3자계약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의료공급자와 수요자 간 생길 수 있는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금감원 측은 "실손보험이 국민의 사적 안전망 역할을 지속할 수 있도록 보험금 누수 방지 및 다수의 선량한 계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지속 추진하겠다"며 "정당한 보험금 청구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지급되도록 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