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안이 낳은 '정년연장' 이슈"정년, 연금개시 연령과 일치해야" 목소리단, 노조 '밥그릇 챙기기' 변질 우려 경계해야
  • ▲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뉴시스
    ▲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뉴시스
    [편집자주] 정부가 국민연금 의무가입기간을 59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법정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선 무조건적인 정년연장이 아닌 고령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노동시장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사 양 측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해외 선진국의 사례와 전문가들의 제언을 토대로 정년연장 해법을 모색해본다.

    정부가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현행 59세에서 64세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정년 연장'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60세 퇴직 후 64세까지 연금을 납부하려면 안정적인 소득을 위한 고용 문제가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9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국민연금을 납부해야 하는 의무가입 연령을 현행 59세에서 64세로 상향 조정하는 계획을 구상 중이다. 지난 4일 정부가 국민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나온 검토 안이다.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비 연금지급액(소득대체율)은 40%에서 42% 수준으로 높이되, 세대별 보험료 인상률을 달리해 청년 세대의 불만을 덜어내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특히 현재 59세까지인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64세로 높이는 방안은 올해 초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에서 시민들의 숙의를 거쳐 내놓은 두 가지 방안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왔던 의견이기도 하다.

    현재 국민연금 개시 연령은 64세다. 그러나 고령자고용법이 정하는 정년은 60세인 관계로 법정 정년과 수급개시 연령 사이에 3년이라는 공백이 생긴다. 2033년이 되면 연금 수령 나이가 65세로 연장되는데 그렇게 되면 정년과 수급 연령 공백이 5년까지 벌어지게 된다.

    예비 연금수급자 본인이 원하면 64세까지 보험료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직장가입자의 경우 사업주가 절반을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 보험료 의무 납입기간 동안 근로자와 사업주가 반반씩 연금을 부담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정년연장 논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 정년연장 두고 노-사 온도 차… 정부는 경영계 방식에 무게

    연금 의무가입 연령 상향 조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노동계는 법정 정년을 65세로 올려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통일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정부의 연금개혁안 발표 직후 입장을 내고 "지금도 국민연금 수급시기까지 소득공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정년연장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계 측의 주장은 정년연장이 기득권층 노조의 '밥그릇 챙기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경영계에서는 획일적 법적 정년연장 대신 정년 이후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계속고용'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제반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업종과 사업장마다 상이한 상황을 고려해 일률적인 법정 정년연장보다는 임금체계 개편, 고용유연성 강화 등으로 재고용을 포함한 계속고용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법정 정년연장보다는 경영계에서 주장하는 계속고용 방식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서 정년만 강제 연장하면 청년 일자리 감소에 따른 세대 갈등 격화,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 증가 등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는 이유 등에서다.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년연장 논의에 앞서 연공서열형 중심의 낡은 임금체계부터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제출한 서면질의에서 "정년제는 대기업·공공기관 위주로 도입되고 있고, 청년층이 대기업·공공기관을 선호하는 점에서 정년연장은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청년층 일자리와의 관계를 고려하고 노사가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 노동 경직성 완화 시급… "고령자 오래 일하는 환경 필요"

    일각에선 시대의 흐름에 맞게 노동시장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년과 실제 퇴직 연령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법정 정년에 한참 못 미쳐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근속연수에 비례해 임금이 올라가는 우리나라 기업문화 특성상 법정 정년연장은 사측 입장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해 고령 근로자의 노동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정년 60세가 법제화된 2013년 이후 최근까지 정년퇴직자 증가율보다 조기퇴직자 증가율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퇴직자는 2013년 28만5000명에서 2022년 41만7000명으로 46.3% 증가한 반면, 명예퇴직, 권고사직, 경영상 해고를 이유로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한 조기퇴직자는 2013년 32만3000명에서 2022년 56만9000명으로 76.2%나 증가했다.

    경총이 지난해 발간한 '정년 60세 법제화 10년, 노동시장의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 60세가 법제화된 2013년 이후 55세 이상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율 및 고용률은 꾸준히 증가했으나, 늘어난 고령 취업자 중 상당수가 임시·일용직 근로자 또는 자영업자로 일자리의 질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총은 보고서에서 법정 정년연장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으로 기업 비용부담 증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및 세대 간 일자리 갈등 심화 등을 들었다.

    이에 경총은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할 법·제도 정비 필요성을 제기했다.

    경총은 "고령자 파견허용 업무 확대, 고용 유연성 제고, 일하는 방식 다양화 등 고령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에 오래 남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