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우려 속 반도체 피크아웃 논란 확산KRX반도체 지수 이달 11% 넘게 하락…전체 지수 중 최악 수익률6거래일간 외국인 삼전 2조원·하이닉스 5천억원 순매도당분간 반도체주 하방 압력 지속 전망…블랙웰 출시 반등 모멘텀 기대도
  • 반도체 업황 회복에 지난 1년간 오르던 메모리 D램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자 반도체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섹터에 불어닥친 찬바람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9일까지 KRX반도체 지수는 11.06% 하락했다. 이는 전체 테마 지수 가운데 가장 높은 하락률이다. 해당 지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한미반도체, 리노공업 등 주요 반도체 종목들로 구성돼 있다. 

    불과 6거래일 만에 삼성전자는 9.15%, SK하이닉스는 9.61% 급락했다. 한미반도체와 리노공업도 -14.76%, -10.42% 내렸다. 

    시계열을 넓혀보면 주가 낙폭은 더 뚜렷하다. 지난 7월 9만원을 넘보던 주가는 다시 2달여 만에 6만원대로 23% 넘게 내렸고, 25만원에 가깝던 SK하이닉스 주가는 15만원대로 35% 추락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8월 초 '블랙먼데이' 이후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이후 마땅한 모멘텀을 찾지 못한 채 우하향하고 있다.

    대형 반도체 종목들의 약세를 견인하는 건 외국인 투자자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 상위 1, 2위 종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6거래일간 국내 증시에서 '팔자'를 지속한 외국인들의 매도세는 삼성전자(1조9694억원)와 SK하이닉스(4938억원)에 집중됐다.

    국내 반도체 종목들이 부진한 이유는 '인공지능(AI) 거품론'이 고개를 들면서다. 

    AI 대장주인 엔비디아는 최근 지난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내놨지만 시장 기대치엔 미치지 못하면서 2주간 주가가 20% 급락했다. 여기에 미 당국의 반독점 조사 악재가 겹쳤다.

    엔비디아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브로드컴도 지난 6일(현지시각) 발표한 3분기 실적은 컨센서스를 상회했지만 다음 분기 가이던스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치면서 하루 만에 주가가 10.4% 급락했다. 

    여기에 최근 발표된 미국 공급관리협회(ISM) 8월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7.2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는 등 경기 침체 우려가 다시 확산하는 점도 기술주들의 주가를 발목 잡는 요인이다. 

    모처럼 살아난 반도체 경기가 다시금 다운사이클(침체기)로 접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레거시(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8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달 대비 2.38% 내린 2.05달러로, 지난해 10월 이후 줄곧 상승 흐름을 보여온 이 제품 값이 올 들어 처음 하락했다.

    JP모간은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컴퓨터, 스마트폰용 메모리 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JP모간은 "HBM 수요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서버용 주문도 견고한 상황"이라면서 "다만 저가 모바일, PC 부문에서 기존 DDR4 규격 제품을 사용하는 수요 심리가 일시적으로 빠르게 냉각되는 게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대형 반도체 종목을 보는 전문가들의 눈높이도 낮아지고 있다.

    JP모간은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기존 12만원에서 10만원으로 하향했다. 올해 연간 주당순이익(EPS)은 기존 주당 6439원에서 6135원으로 4.72% 내려 잡았다. 내년도 연간 주당순이익(EPS)은 9522원에서 8204원으로 13.84% 낮췄다.

    국내 증권사들도 잇달아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낮추고 있다. KB증권은 목표주가를 기존 13만원에서 9만5000원으로, 현대차증권은 11만원에서 10만4000원으로 눈높이를 하향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만큼 당분간 반도체주에 대한 하방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구조적인 AI 혁신 기대에도 반도체 산업은 경기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국내 반도체 업체 주가는 제대로 반등하지 못한 상태에서 재차 급락해 심리적인 손상이 컸다"며 "당분간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나 자산에 대해서는 경계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 둔화가 진행 중으로 금리 인하에 따른 반전을 기대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공격보다 수비가 유효한 시점으로 기술주보다 비기술주 중심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둘러 적극적인 저가 매수보단 관망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경기와 업황이 둔화되는 최악의 경우 (삼성전자 주가가) 20% 수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주가가 단기간 급락한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지켜보는 전략을 권고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엔비디아의 신제품 출시는 반도체 주가의 반전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블랙웰 제품은 'B200A'와 'B200'으로 구분되는데 최근 TSMC와의 협업 강화를 통해 해당 제품들이 연내 공급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며 "연내 클라우드서비스공급자(CSP)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기업들로부터 승인(Qualification)을 받는다면 수요의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반도체 업종의 V자 반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