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만 평균 9.7% 인상…1년 만의 추가 인상서민 부담 완화·한전 재무개선 위한 고육지책 평가재무개선 달성 어렵고 산업경쟁력 훼손시킬거란 우려도산업계 "고물가·고금리로 이미 한계… 경영활동 위축 가속화"
  • ▲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과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전기요금 조정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과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전기요금 조정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전력당국이 24일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을 평균 9.7% 올리고 일반가정 및 소상공인 전기요금은 동결하기로 했다. 서민 물가 안정과 한국전력의 경영 정상화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2021년부터 누적 적자가 41조원을 넘고, 한전의 총부채가 200조원을 웃돌고 있는 상황에서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엔 역부족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고물가 여파로 생산비용이 증가하며 부담이 커진 기업들을 옥죄는 결과로 이어질거란 우려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최남호 산업부 2차관과 김동철 한전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브리핑을 열어 전기요금 인상 방안을 발표했다. 전기요금은 전기판매사업자인 한전이 안을 내면 전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산업부 장관이 인가해 결정된다.

    이번 결정에 따라 산업용 요금은 평균 9.7% 인상된다. 세부적으로 대용량 고객을 대상으로 한 산업용(을) 전기요금은 1kWh(킬로와트시)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0.2%, 중소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산업용(갑) 전기요금은 164.8원에서 173.3원으로 5.2% 각각 인상된다.

    산업용 외에 주택용 및 소상공인 요금은 동결된다. 산업부와 한전은 "서민 경제 부담과 물가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가장 최근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진 것은 W 11월로, 당시 주택용과 일반용 등을 제외하고 산업용만 평균 4.9% 인상했다.

    산업용 요금 고객은 약 44만호로 전체 한전 고객(약 2500만여호)의 1.7% 수준이지만, 전력 사용량은 53.2%에 달한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한전이 산업용에 국한된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전체 요금을 약 5%가량 올리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로 인한 추가 전기 판매 수익은 연간 약 4조7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김동철 사장은 "이번 산업용 요금 인상으로 기업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산업용(을)을 사용하는 대기업의 평균 사용량을 감안하면 연평균 약 1억1000만원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는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 재무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최 차관은 "매출이나 재무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천연가스(LPG) 가격 변동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하므로 수치로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요금 인상은 요금 조정 영향을 받는 고객의 수를 최소화하면서도 시장에 가격 신호를 제공해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유도하고, 한전의 누적 적자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 ▲ 한국전력 ⓒ뉴데일리DB
    ▲ 한국전력 ⓒ뉴데일리DB
    다만 전력을 비싼 값에 사서 싼값에 파는 한전의 역마진 구조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전의 만성 적저 구조까지 개선하긴 어려울 거란 분석도 나온다. 2021년부터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을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서 한전은 2년 이상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팔았다.

    2022년 이후 6차례 요금 인상과 고강도 자구 노력을 했음에도 2021년부터 2024년 한전의 상반기 누적 적자는 41조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부채는 약 203조원 수준으로 재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대규모 적자로 차입금이 급증해 하루 이자 비용만 122억원이 발생하고 있다. 

    형평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작년 11월에도 정부는 산업용(을) 전기요금을 평균 ㎾h당 10.6원 가량 올린데 이어 이번에도 산업용(갑·을) 전기요금만 인상하는 결정을 내린 탓이다. 기업들의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부추겨 결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거란 걱정도 크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한전의 올해 상반기 기준 적자가 41조원으로, 이번 산업용 요금 인상만으로는 적자 해소에 매우 부족하다"면서 "산업체가 전체 전력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53%이므로 이 부분에서 인상해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요금 인상에 대한 합리성과 형평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산업계에서도 한전의 막대한 적자와 부채를 고려할 때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경영상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반도체·철강·자동차 업종들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제품 원가가 올라가는 셈인데 가뜩이나 고유가·고물가 상황에 생산비용이 급증했는데 운영비가 더 증가하는 건 부담일 수밖에 없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논평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제조원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연속해서 인상하는 것은 성장의 원천인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고 산업경쟁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인협회도 이날 이상호 경제산업본부장 명의 입장문을 내고 "국내 산업계는 고물가·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에 놓였다"며 "전기요금 차등 인상으로 경영 활동 위축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 차관은 "이번 인상은 수출용 대기업 부분에서 고통을 분담했으면 좋지 않겠냐라는 차원에서 산업용 중심으로 올렸다"면서 "일반 국민들이 많이 쓰는 주택용 전기요금과 소상공인이 많이 쓰는 일반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은 민생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