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장기화 공포에 원화 가치 ‘뚝’… 환율 ‘1500원 시대’ 가능성韓 성장률 하향 조정 잇달아… 1%대 저성장 늪 깊어진다당국 환율방어 총력… 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선 무너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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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최고조로 치달으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고착화를 넘어 1500원 선까지 상단을 열어 둬야 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전날(9일) 1440원에 근접했던 ‘블랙 먼데이’ 수준의 쇼크는 하룻만에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한국 경제가 내수 침체와 수출 둔화로 1%대 저성장의 늪에 빠질 거란 예고 속에서 정치 불안이라는 겹악재를 맞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탄핵 정국 장기화로 인한 국내 정치 불안이 지속될 경우 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예측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치 불안 속 환율 상단 조정… 1500원선 돌파 전망도

    10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6.1원 내린 1430.9원으로 개장했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원·달러 환율은 1446.5원까지 치솟으며 2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차 계엄령 선포 의혹이 제기됐던 6일에는 한때 20원 가까이 오르며 1429.2원을 기록했다.

    탄핵안이 부결된 이후 맞이한 첫 평일인 9일에는 장중 1436원선까지 올랐다가 주간 거래 종가는 전날 대비 17.8원 오른 1437원에 마감했다. 이는 주간 기준 지난 2022년 10월 이후 2년1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했던 건 △외환위기(1997년) △금융위기(2008년) △레고사태(2022년) 등 총 3차례였다. 일각에서는 원화 약세가 장기화될 경우 네 번째 경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 당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 1158.5원(12월 8일)에서 1210.5원(12월 28일)으로 약 2주 만에 52원 상승했었다.

    전날 1430원대에서 움직였던 환율이 이날 1420원대로 내려오며 현재 하루 만에 진정된 모습이지만 탄핵 사태 장기화로 당분간 환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은 상단을 1450원까지 열어 두고, 최악의 경우에는 1500원 선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인 노무라증권은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미국 금리 상승 및 강달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2분기까지 원화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며 내년 5월 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유동성 충분히 공급하겠다고 밝히는 등 자산가치 방어 총력에 나섰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외환당국의 개입이 불가피해진 상황 가운데 외환보유액에 대한 감소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말 기준 우리 외환보유액은 4154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였던 2021년 10월(4692억 달러) 대비 538억 달러(11.5%)나 줄었다. 환율 급등을 방어하기 위해 달러가 사용되면서 이달 말에는 4000억 달러 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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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저성장 경고 잇달아… 내년 성장률 줄하향 

    시장에서는 비상계엄 후폭풍이 일면서 한국 경제 성장률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앞서 주요 기관들은 내수 부진으로 한국 경제 성장률을 이미 일제히 1%대로 전망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1.9%로 제시했다. 글로벌 IB(투자은행) 8곳이 제시한 성장률 전망치도 평균 1.8%에 그쳤다. 이는 한 달 전 대비 0.2%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편 관세 등 경제 정책에 대한 우려에 이어 정국 불안 요소가 추가되면서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1.8%로 유지했다. 골드만삭스는 “과거 탄핵 국면에서 정치적 불안정이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점은 이번 상황에 대한 적절한 비교기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며 “내년에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수출의존국들이 외부적 역풍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기존보다 0.5%포인트 낮춘 1.7%로 하향 조정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아시아 금리 및 외환 전략 공동 책임자인 아다르쉬는 "탄핵 표결 무산으로 불확실성이 더 오랜 기간 지속되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며 "경기가 좋지 않아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탄핵마저 불발해 원화가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