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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상담센터 모습. ⓒ연합뉴스
현재 국민연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적절한 보험료이다. 수지상등(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는 조건)을 만족하는 국민연금 연금보험요율(이하 ‘보험요율’)은 19.6%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의 연금보험료는 1988년 3% → 9% 인상안이 결정되었고, 작년에는 9% →13% 인상안이 발표되었다.
20%가 수지상등을 만족하는 보험요율임에도 국민연금은 오랜 기간 낮은 보험요율을 유지하였고, 최근 개혁안인 13% 보험요율도 20%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수지상등을 만족하지 못하는 보험요율로 오랫동안 보험사업을 운영하면 결국 큰 규모의 결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것은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모순덩어리인 국민연금 제도하에서의 (경제적) 승자와 패자는 누구일까? 우리는 이를 구분하기에 앞서 국민연금에 대규모 결손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누가 책임을 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연금법에는 기금 고갈의 책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국민연금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이 고갈되더라도 어떻게든 국가가 책임을 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사회 초년생도 정부가 필요한 재원의 대부분을 세금에서 얻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연금의 결손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금으로 국민연금을 보조하는 것이다. 이제 국민연금 게임의 승자와 패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보자.
먼저 국민연금 제도하에서 가장 큰 승자는 낮은 보험요율로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들이다. 3~9% 수준의 보험요율로 연금보험료를 내고 이미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들이 국민연금 게임의 금메달리스트이다. 다음은 그보다 높은 수준의 보험요율로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국민연금을 고갈되기 전 사망 시점까지 연금을 받는 사람들이 은메달리스트이고, 마지막으로 기금이 고갈되어 연금을 사망 시점까지는 받지 못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납부한 연금보험료 이상의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는 사람들이 동메달리스트이다.
올림픽에는 금·은·동 메달만 있지만 국민연금 게임에는 상이 아니라 페널티만 받는 참가자들이 존재한다. 먼저 패자의 첫 번째 부류는 자신이 납부한 연금보험료 대비 충분한 연금을 받지 못하는 부류이고, 두 번째 부류는 성실히 연금보험료를 납부하고 연금을 받지 못하는 부류이다. 국민연금 게임의 또 다른 패자는 정부가 세금으로 국민연금을 보조할 때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납부한 세금이 국민연금에 보조금으로 지급되고 동시에 국민연금 연금보험료를 납부하지만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가장 비참한 패자이다.
이처럼 국민연금은 오래전에 가입한 사람을 승자로, 최근에 가입하였거나 앞으로 가입할 사람들을 패자로 구분한다. 따라서 국민연금 게임에서 승자는 기성세대이고, 패자는 신세대이다. 그러면 게임에 참가하는 시점만으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게임이 공정한 게임일까? 세대별로 경제적 이익·손해가 극명하게 갈리는 제도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이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23조는 국민의 재산권 보장의 내용 및 한계가 법률로 정하여진다고 기술하고 있다. 국민연금법이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에게 국민연금의 가입을 의무화한 것은 법률에 따른 재산권의 제한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재산권의 제한뿐 아니라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에 관한 내용도 정하고 있다. 헌법 제23조 제3항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이 국민의 재산권을 일부 제한함에도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은 이유는 기존 국민연금 가입자 대부분이 자신들이 납부한 연금보험료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세대에게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득(得)은 없고 실(失)만 있는 제도이며 동시에 재산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 우리 헌법은 분명하게 법률에 따른 재산권 제한은 그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만일 국민연금 제도가 신세대에 정당한 수준의 보상을 보장하지 못함에도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면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신세대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도록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옵트아웃 도입, 세대 간 연금 계정 분리, 또는 국민연금 제도 폐지 등의 방법으로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크게 변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