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물러난 트럼프 … 현지 업계 반발 직면멕시코 진출한 기아 및 한국 부품사들 시간 벌어현대차·기아 '산 넘어 산' … 관세 대응 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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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 수입차에 대한 관세를 한 달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들 국가를 생산기지로 활용하며 미국 시장에 무관세 수출 혜택을 누려왔던 현대차·기아 등 국내 자동차 업계와 부품업계도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5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을 통해 수입된 자동차에 대한 추가 관세를 한 달간 면제한다"라며 "USMCA 및 관련 업계의 요청에 따라 그들이 경제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관세 적용을 1개월간 면제한다"라고 밝혔다.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4일부터 부과하려다가 한 달간 유예했던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 조치를 이달 4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그러나 관세 부과 조치 이후 그동안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무관세로 공급망이 통합돼 있던 자동차를 비롯해 미국 내 일부 산업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특히 미국 자동차 업계가 트럼프 행정부에 "관세 부과가 비용 상승을 부추겨 자동차 가격이 수천 달러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한 점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에서도 야당인 민주당과 집권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관세 부과를 재고해야 한다"라는 지적이 쏟아졌다.실제 포드 최고경영자(CEO)와 스텔란티스 회장은 직접 나서 관세에 반대하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이들 제조사는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이른바 미국 자동차 '빅3'를 구성한다.짐 팔리 포드 CEO는 관세 부과가 미국 자동차 회사에 "파괴적"이라며 업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스텔란티스의 존 엘칸 회장 또한 "북미 지역의 자동차 무관세 체제가 유지돼야 한다"라며 트럼프 행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캐나다‧멕시코를 생산기지로 활용하며 미국 시장에 무관세 수출 혜택을 누려왔던 현대차·기아 등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이들도 USMCA 규정을 준수하면 관세 면제 혜택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USMCA 규정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 면세 혜택을 받기 위해선 75%의 북미산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 엔진·변속기 등 '핵심 부품' 기준으로는 승용차의 경우 40%, 픽업트럭은 45%를 미국 또는 캐나다에서 제조해야 한다.업계에선 특히 멕시코 현지에 공장을 둔 기아가 가장 큰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아는 멕시코 몬테레이에 공장을 두고 있는데 연간 40만 대 생산능력을 갖췄다. 지난해에는 약 25만 대를 생산했다.기아 외에도 현대모비스·현대트랜시스 등 부품사들도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이들 기업은 기아 몬테레이 공장 인근에 생산거점을 마련해 현대차·기아 북미 생산 공장에 납품하고 있다.다만 일각에선 이번 한 달 유예로 국내 기업들이 시간을 벌었을 뿐 멕시코 내 공장을 가동해 왔던 자동차 업체들의 미국 생산 이전은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대표적으로 혼다는 멕시코에서 생산하던 시빅(Civic)의 차세대 모델부터 미국 인디애나 공장으로 생산거점 이전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빅은 혼다의 미국 판매량 2위 모델이다.현대차·기아 역시 올해부터 본격 가동될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 물량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현재 HMGMA의 연간 생산 규모는 30만 대지만, 부지 등을 고려할 때 생산량을 연간 50만 대까지 늘릴 수 있다는 목표다. 이 경우 기존의 앨라배마, 조지아 공장을 더해 최대 120만 대를 미국에서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전문가들은 특히 미국이 멕시코 캐나다산 차량에 대해 관세 부과를 한 달 유예했으나, 다음 달 한국 생산분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가 남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한다.신윤철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미 양국 간 관세 협상 방향성과 시점은 여전히 예측 범위 밖"이라며 "여전히 본게임은 한국 생산분에 대한 4월 2일 상호관세 부과"라고 강조했다.이에 국내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움직이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여전히 관세 부과를 전제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한 업계 관계자는 "관세를 한 달 유예하는 것은 물론 환영할 만한 소식이지만, 여전히 트럼프가 이를 협상의 카드로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상황을 지켜보며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