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퍼 원산지 기준 생산 공장 소재지로인텔, TI 등 125% 관세 부과 가능성 커져中 생산시설 보유한 삼성·SK 수혜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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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이 나날이 격화하는 미국의 대중제재에 맞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을 견제하는 신규 규제를 내놨다. 글로벌파운드리즈, 인텔,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이 직접 영향권에 들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중국 내 생산기지를 확보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반도체산업협회(CSIA)는 대만산 등의 칩에 대한 관세를 면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칩 수입 정책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패키징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반도체 수입통관시 원산지는 웨이퍼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이 위치한 곳을 기준으로 한다. 즉, 최종 제품이 만들어지는 패키징 지역이 아닌 칩 생산지를 관세 적용 대상으로 보겠다는 의미다. 

    그간 반도체 업계에서는 관세 적용 대상이 칩인지, 완성된 제품인지에 대한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해왔다. 반도체 공급망 특성상 고도로 전문화·다국가화돼있는 탓에 원산지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가 패키징이 이뤄지는 최종 생산지를 중심으로 관세를 부과해왔다. 예컨대 미국 등 공장에서 웨이퍼를 생산한 후 중국에서 패키징을 완료하면 최종생산지는 중국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해당 정책이 발표된 직후 기업들은 웨이퍼 제조지가 미국으로 명시된 ‘메이드 인 USA’ 칩에 대해 인도를 중단하고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일부 기업들은 재고 확보를 위해 ‘관세 면제’ 정책을 활용하려 시도 중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달 10일 12시 이전에 선적되고 5월 13일 이전 수입 신고를 완료하는 경우 관세가 면제된다. 다만 이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게 업계 소식통의 전언이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미국에 생산기지를 둔 미국 반도체 기업을 겨냥한 ‘핀셋 조치’로 해석된다.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는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 사이 무관세 적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서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연일 상대국에 고관세를 부과하며 관세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전쟁의 일환으로 미국이 중국에 대한 관세를 145%로 재산정하자, 중국은 미국에 대한 관세율을 125%로 높이는 보복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생산기지를 갖춘 국내기업에도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개정안에 따라 미국에서 웨이퍼를 생산하는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애널로그디바이시스 등 칩 제품에 미국에 부과 중인 125% 관세가 그대로 부과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아일랜드, 동남아 등에 생산기지 일부를 보유한 인텔의 영향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인텔은 중국 중앙처리장치(CPU) 시장 지배력이 높다. AMD가 가파르게 추격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수요가 견조한 편이다. 2분기는 구매 계약을 이미 완료했기 때문에 수요나 가격에 큰 영향이 없을 수 있으나 그 이후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반도체 제품(집적회로, 반도체 소자, 반도체 장비 및 부품 포함) 수입액은 3조2000억위안, 수출액은 1조5100위안이다. 전체 수출액 가운데 미국으로의 직접 수출액은 1.53%에 불과하나 전체 수입액 가운데 미국으로부터의 직접 수입액은 3.76%로 두배가 넘는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낸드플래시)과 쑤저우(패키징)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우시(D램)와 다롄(낸드), 충칭(패키징) 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다. 칩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패키징까지 할 수 있는 만큼 관세 영향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중국의 적극적인 경제 부양책에 힘입어 양사의 중국법인은 모두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에서 운영 중인 낸드플래시 생산법인 삼성 차이나 반도체(SCS) 의 지난해 매출은 11조1802억원, 영업이익은 1조1954억원을 기록했다. 또한 판매법인인 상하이 삼성 반도체(SSS)의 작년 매출은 30조684억원으로 전년 15조6493억원 대비 두 배 가량 늘었다. 

    우시에 있는 SK하이닉스 반도체 차이나도 지난해 매출 5조6127억원, 영업이익 5985억원을 달성했다. 순손실 1469억원을 냈던 2023년과 비교해 대폭 개선된 수준이다. 중국에서 D램과 낸드를 모두 맡고 있는 판매법인 SK하이닉스 반도체 세일즈의 작년 매출과 순이익도 각각 13조104억원, 1432억원이었다. 전년보다 각각 64.3%, 65.4% 늘어난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정책이 실제 시행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미국 반도체 회사들의 점유율을 소폭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중국 본토 파운드리의 점유율과 가격 책정권도 늘어나게 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