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장기물 국채 금리 급등세 … 일제히 최고치 경신20년 만기 국채 입찰 부진·소비세 감세 논의에 투심 ↓“국채 시장 약세 지속 시 글로벌 자금 급격한 변화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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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금융시장에서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의 국채 금리가 장기물을 중심으로 치솟고 있다. 20년 만기 국채 입찰이 부진했던 데다 재정 확대를 위한 소비세 감세 논의가 나오면서다. 미국 국채와 함께 대표적 안전 자산으로 꼽히던 일본 국채의 약세가 이어지자 글로벌 금융시장의 긴장도도 높아지는 모습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일본 국채 시장에서 장기물들의 금리는 전반적인 하락세다. 현지 시각 오후 3시 기준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는 4bp(1bp=0.01%포인트) 내린 1.510%를 나타내고 있으며 20년물과 30년물도 각각 4.9bp, 6.5bp씩 하락 중이다. 40년물의 경우에도 3.533%(-5bp)까지 내려왔다.

    앞서 일본 장기물 국채 금리는 급등세를 맞은 바 있다. 지난 21일 장중 한때 30·40년 만기 일본 국채는 3.185%, 3.635%까지 치솟으면서 최고치를 경신했고 20년물도 지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2.575%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 재무성이 지난 20일 실시한 20년 만기 국채 경매 결과가 부진했던 영향이다. 이번 입찰에서 평균 낙찰가와 최저 낙찰가 차이는 1.14엔으로 지난 1987년 이후 38년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국채 입찰 경쟁률은 2.5배로 2012년 8월 이후 최저치였다. 이에 일본에서는 ‘38년 만의 최악의 국채 파동’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정치권에서 소비세 감세 논의가 나온 점도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정치권에서 소비세 감세 논의가 나오면서 부족한 사회보장 재원을 국채로 메꿀 것이라는 관측에 장기물 국채 금리가 올랐다”고 분석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일본의 재정 상황은 그리스보다 나쁘다”고 말해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아사히 신문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인용해 일본의 202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250%로 그리스가 재정 위기에 직면했던 2009년(127%)보다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주요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특히 일본은 미국채 보유 1위 국가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경제, 재정, 통화정책 등의 행방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먼저 일본 국채 금리 급등으로 일본계 자금 이동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확대됐다. 일본 국채 금리 상승에 따른 미-일 간 금리 스프레드 축소 시 미국 등 해외채권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낮아지고 환율 헤지 비용 등의 상승이 예상돼 일본 생보사를 중심으로 일본계 자금이 일본 본국으로 환류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최근 엔화 강세와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일본의 해외 증권투자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상황인데, 미국과 일본 내 국채 금리의 동반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일본의 미국 국채 투자 등 대미 증권투자가 축소될 수 있다”며 “일본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협상 카드로 미국 국채 매도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일본 국채 금리의 급등은 엔화 강세 압력으로 작용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압력을 급격히 높일 수 있는 잠재 위험요인이다. 실제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연초 156엔 수준에서 이날 142.88엔으로 낮아지면서 엔화 가치는 8% 이상 뛰었다.

    박 연구원은 “미국 국채 금리 흐름도 중요하지만, 일본 국채 금리의 추가 상승 여부는 일본계 자금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자금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금리 흐름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며 “오는 6월 일본은행(BOJ)의 금융정책회의 결과에 대한 금융시장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호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올해 1분기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역성장을 기록하며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둔화되는 국면에 진입했다”며 “여기에 무역 갈등에 따른 관세 리스크가 맞물리며 일본 경제의 하방 압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와 달리 BOJ는 통화정책의 선택지도 제한적인 상황으로 일본의 다음 선택지는 더 이상 금리만이 아니라 정책 신뢰와 채권시장의 안정성 확보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일본 초장기물 국채의 약세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혜영 LS증권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초장기 국채 투자의 주요 주체는 일본 국내 생명보험사, 연기금 등의 기관인데, 이들의 소극적인 초장기 국채 매입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요 매수자로 부상한 점이 추가 약세를 일으킬 수 있다”며 “도쿄도의회 의원선거(6월 22일)와 참의원 선거(7월 20일)를 앞두고 정부가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어 추가 국채 발행 경계심이 높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해서 일본에 국방비 지출 확대를 압박하고 있는 점도 추가 공급 부담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이러한 수급 부담으로 인해 당분간 초장기물 금리 중심의 약세 흐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