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앤에프 등 5개 종목에 중립·매도 의견 제시9일 공매도 공시 … 고의적 변동성 유발 의혹“피해는 개인 몫 … 금융당국 단속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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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 이차전지 시장에 대해 부정적으로 전망한 골드만삭스가 중립·매도 의견을 낸 5개 종목 모두 공매도 포지션을 취하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시장에서는 보고서를 통해 고의로 주가 변동성을 키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주요 이차전지 종목들은 개인투자자들의 비중이 높은 만큼 반발이 거셀 전망이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지난 9일 ▲엘앤에프 ▲SK이노베이션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LG에너지솔루션 등 5개 종목에 대해 중립(Neutral)·매도(Sell)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LG화학과 삼성SDI는 각각 매수(Buy) 의견을 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 이차전지 업황이 전반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유럽 시장에서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입이 급증하고 있는 데다 미국 전기차 시장 규모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차전지 소재 기업 엘앤에프의 목표주가를 기존 8만원에서 절반 수준인 4만원으로 하향했다. 신규 고객사·신제품 파이프라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기존 제품의 차별성도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골드만삭스는 엘앤에프의 지난해 전체 매출 중 LG에너지솔루션 비중이 80% 이상인 점을 언급하며 수익 구조가 특정 고객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재무 건전성도 지적하며 내년 말 기준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 추정치를 각각 376%, 0.3%로 제시했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해당 지표가 1 미만이면 그해 이익으로 이자조차 다 갚지 못함을 의미한다.

    국내 이차전지주들은 해당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거래일인 9일 급락세를 맞았다. ‘KRX 2차전지 TOP 10 지수’는 0.62% 하락해 코스피(1.55%)·코스닥(1.06%) 지수 수익률을 밑돌았고 거래소가 산출하는 34개 테마형 지수 중에서도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이날 골드만삭스가 중립·매도 의견을 낸 종목 가운데 ▲엘앤에프(-9.51%) ▲에코프로비엠(-3.95%) ▲LG에너지솔루션(-2.06%) ▲포스코퓨처엠(-1.18%)이 하락했다. SK이노베이션은 홀로 1.30% 올랐다. 이들 종목은 이튿날인 10일에도 혼조세를 보였으며 전날(11일)에는 미국 테슬라 훈풍에 힘입어 대부분 상승 마감했지만, 직격탄을 맞은 엘앤에프의 수익률은 여전히 –10.56%다.

    시장에서는 골드만삭스의 보고서가 기존 국내 증권사들이 발표한 보고서들의 내용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EV)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과 중국발 공급 과잉 등에 따른 국내 이차전지 업황 둔화는 이미 예전부터 나오던 이야기들”이라며 “참여자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한 번 더 꼬집을 이유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 골드만삭스는 중립·매도 의견을 제시한 종목들 모두에 공매도 순보유잔고 대량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공매도 순보유잔고 대량보유자는 해당 종목에 대한 순보유잔고가 마이너스(-)이면서 상장주식 수의 0.01% 이상(1억원 미만 제외) 또는 평가액 10억원 이상인 경우 신고 대상이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발표한 지난 9일 ▲에코프로비엠(최초 의무발생일 2022년 7월 15일) ▲포스코퓨처엠(2023년 4월 24일) ▲LG에너지솔루션(2024년 12월 2일) ▲SK이노베이션(2025년 4월 1일) ▲엘앤에프(2025년 5월 23일)에 대한 공매도 공시 의무를 이행했다. 대부분 오랜 기간 공매도 중이었으며 SK이노베이션과 엘앤에프의 경우 지난 3월 말 공매도 전면 재개 이후 포지션을 취해 1년 내 대차거래를 상환해야 한다. 반면 ‘매수’ 의견을 냈던 LG화학과 삼성SDI는 숏 포지션이 없었다.

    또한 엘앤에프의 공매도 순보유잔고 수량은 지난 5일 50만5872주에서 9일 62만6512주로 23.85%나 급증했고 같은 기간 에코프로비엠과 LG에너지솔루션도 각각 2.08%, 1.39%씩 늘었다. SK이노베이션은 2.73%, 포스코퓨처엠은 0.93% 줄었다.

    해외 IB의 매도 포지션 이후 부정 보고서 발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9월 이른바 ‘반도체 겨울론’을 제기하며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반토막 낸 모건스탠리는 보고서 발표 이틀 전 서울지점 창구를 통해 대규모 매도 주문이 체결돼 선행매매 의혹을 받았다.

    골드만삭스의 매도 보고서 발표 이후 2차전지주들이 신정부 출범에 따른 ‘허니문 랠리’에 타지 못하고 폭락하자 개인투자자들의 불만도 높아졌다. 최근 국내 증시가 정책 ‘기대감’만으로 급등세를 보인 모습과는 상반돼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저가 공세에 맞서기 위한 K-배터리 산업 육성 의지를 밝혀왔다. 그는 “전고체 배터리(Solid-State Battery)는 화재위험을 줄이고 사용 시간을 늘릴 수 있는 차세대 핵심 기술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분야”라며 “전고체 배터리의 실증 연구부터 상용화까지 국가가 적극 뒷받침하고 미드니켈과 나트륨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 연구개발(R&D)도 함께 확대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국내생산촉진세제도 제시했는데, 이는 국내에서 최종 생산·판매한 기업들에게 생산·판매량에 비례해 법인세를 공제하는 제도다. 이차전지, 반도체 기업 등의 해외 이탈을 막는다는 점에서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도 불린다. 현재 민주당에서 관련 법을 발의한 상태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외국계 IB가 악의적인 보고서를 통해 시장을 왜곡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이 없는 개인투자자들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당국에서 외국계 IB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불공정거래 행위 근절’과 ‘코스피 5000’시대를 공언해온 만큼 새 정부 들어서는 공정하고 공평한 증시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