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배럴당 130달러 가능성 … 업계 초긴장비축유로 단기 충격 작을 듯 … 장기화 시 타격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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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해 중인 대형 컨테이너선과 화물선ⓒAP/뉴시스
지난 몇 년 동안 중동 정세가 불안정할 때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는 단골로 거론돼왔다. 하지만 이번 미국의 이란-이스라엘 무력 충돌 개입 이후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혹시 모를 리스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특히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적으로 봉쇄될 경우, 국내 정유업계에 미치는 충격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정유업계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약 70%에 달하는 만큼, 원유 수급 차질과 함께 한 해 경영 전략에도 불가피하게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2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정유사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현재로서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물리적으로 닫는’ 방식보다는 상업 운항 자체가 어려울 만큼 위험 수역으로 만들어 사실상 봉쇄하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최적 경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기존 선적항 외 다른 선적항에서 원유를 실어 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정유업계 관계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까지 원유를 들여오는 데는 보통 3~4주 정도 걸리는데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경로를 통해 2~3일 정도 더 소요될 것으로 시뮬레이션 하고 있다"고 했다.국내 정유업계는 현재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절대적인 만큼 미국, 남미, 일부 유럽산 원유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물동량 확보, 가격 경쟁력 등에서 중동산을 대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리스크 관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실제로 어떤 상황이 전개되든 이번 공습으로 촉발된 중동 지역 불안정성만으로도 국제 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충돌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는 극단적 시나리오에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통상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 정유사들은 단기적으로 재고 평가 이익과 제품가 일부 상승에 따른 정제 마진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제 마진은 정유사가 원유를 들여와 석유 제품으로 정제한 뒤 판매할 때 얻는 이익을 의미한다.하지만 정유업계는 이번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가 급등은 오히려 정유사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경기가 둔화된 상황에서 유가만 오르면 석유 제품 수요가 줄어들어 마진 개선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급등하면 지금도 좋지 않은 경기 상황이 더 악화되면서 석유 제품을 포함해 전반적인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며 "유가가 오른다고 해서 정제 마진이 무조건 좋아지는 구조가 아니고, 오히려 수요 둔화로 마진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정제 마진이 좋은 수준은 아니고 그럭저럭 버틸 만한 정도인데, 유가 급등이 이어지면 업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
- ▲ 호르무즈 해협ⓒ구글 지도 갈무리
정유업계는 당장의 원유 수급 차질이 본격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와 민간의 석유 비축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는 1979년 설립 이래 국가 석유비축사업을 추진해 올해 3월 말 기준 1억4600만 배럴 규모의 비축시설에 약 9900만 배럴(공동비축사업 제외)의 비축유를 확보해 놓은 상태다.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과거에도 걸프전(1991년, 494만 배럴), 허리케인 카트리나(2005년, 291.6만 배럴), 리비아 사태(2011년, 346.5만 배럴),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고유가 대응을 위해 비축유를 두 차례 방출(1차 442만 배럴, 2차 723만 배럴)한 바 있다.정유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우려되고 있지만, 200일 정도 버틸 수 있는 비축유가 있어 당장 급격한 공급 차질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중동 긴장 상태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정유사들도 공급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관련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대응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석유화학 업계 관계자 역시 "불확실성 가중 및 단기 유가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 등 실적 악화 요인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최근 국제정세 불안정은 이미 오래된 일이어서 수시로 대응방안을 마련해 왔으며, 대외 변수에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경쟁력 제고 방안을 지속 모색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