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성 자산 2.7조… 5월 SKB 매각대금 7천억 현금 수령 정부는 자사주 소각 유도… 법 시행 전 정반대 행보"계열 PE 활용한 우회 인수, 정당성 따져봐야"
  • ▲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뉴데일리
    ▲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뉴데일리
    태광산업이 자사주 기반의 교환사채(EB)를 발행해 애경산업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꼼수 인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자사주 소각을 유도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법 시행 전 자사주를 전량 처분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인수 주체로 계열 사모펀드(PE)를 앞세운 점 역시 우회 인수 및 배임 가능성이라는 지적을 낳고 있다.


    ◆ 애경산업 인수, 기존 사업과 시너지 내기 힘들어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최근 매각이 진행 중인 애경산업의 지분 63.38%에 대한 적격 예비인수후보(숏리스트) 5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됐다. 

    애경산업은 화장품 브랜드 AGE20s(에이지투웨니스)와 생활용품 브랜드 '2080' 등을 보유한 애경그룹의 핵심 자회사다. 태광은 투자 전문 자회사 티투프라이빗에쿼티가 유안타인베스트먼트와 공동운용사를 결성해 재무적투자자로 나서고, 태광그룹이 전략적 투자자로 역할 분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태광그룹의 핵심 사업구조는 석유화학과 금융으로 꼽힌다. 태광산업, 흥국생명, 티캐스트 등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돼 있다. 섬유·화학을 주력으로 삼는 태광산업이 애경산업 인수전에 적극 나선 것은 의외라는 평가가 많다. 태광산업의 기존 사업구조와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는 뷰티·미용 영역에서 활용도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태광이 화장품, 부동산, 블록체인 분야 등으로 사업구조를 확대하려는 것은 화학분야의 불황이 깊어지면서 신사업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특히 실질적인 총수인 이호진 전 회장이 사법리스크로 경영 일선에 물러난 이래 지난 10년 넘게 이어온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눈에 띄는 투자가 전무했다. 이 과정에서 태광그룹의 재계 순위는 36위에서 59위까지 밀려난 상황이다. 

    태광산업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총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신규 사업투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 첫걸음이 애경산업 인수전이다. 

    ◆ 애경산업 인수대금 없어서 EB 발행?

    문제는 자금조달 방식이다. 

    앞서 태광산업은 지난 6월 27일 이사회에서 자사주 전량(27만1769주, 지분율 24.41%)을 담보로 3186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 발행을 결의했다. 

    EB 발행 대상은 한국투자증권으로 3년 약정의 이자율은 0%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제 3자 배정 유상증자와 유사하다. 

    정부는 최근 상법 개정을 통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 중이다. 자사주를 장기간 보유해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는 관행을 차단하기 위한 취지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태광이 법 시행 전에 자사주를 최대한 활용해 투자 재원을 확보하려는 것은 일종의 자사주 '엑시트' 전략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회사 측은 "정부 정책을 반영해 자사주를 소각하고 주식 가치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적극적인 투자와 사업 재편을 통해 생존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태광산업의 유동자산은 무려 3조원에 이른다. 태광산업은 5월 연결 기준으로 2조7692억원의 유동자산을 갖고 있다. 지난 5월 14일 SK브로드밴드 지분 매각 대금 7776억원이 현금 일시불로 유입된 결과다. 부채는 880억원에 불과하다. 

    즉, 회사채 등 외부 자금조달 수단도 충분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태광산업 측은 "5월 말 기준 태광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금은 1조9000억원에 달하지만, 실제 신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은 1조원 미만으로 추산된다"고 반박했다.
  • ◆ "PE 인수 구조 정당거래 여부 따져봐야"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이 교환사채 발행을 단행한 것은 기존 주주의 권익을 훼손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이번 EB 발행 결의에 대해 법적 대응을 예고했으며, 일단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트러스톤 관계자는 "애경산업을 태광산업이 직접 인수하는 것도 아니고 산하 PE를 통해 인수하는 구조인데, 이것이 정당한 거래인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처분 신청은 상법 위반 소지만 다룰게 아니라 자사주 가격 산정의 타당성 여부도 포함돼 있다"면서 "주당 순자산가치의 4분의 1 수준에 자사주를 처분한 것은 배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에서는 애경산업 인수대금이 6000억~7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애경산업의 현재 시가총액은 약 4300억원(1일 종가 1만6300원 기준)이다. 애경그룹이 보유한 지분 63.38%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한 결과다. 

    태광산업이 조달한 EB 자금 3186억원은 인수자금 일부로 활용되고, 나머지는 PE나 외부 공동 투자자 자금을 통해 충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숏리스트에 선정된 기업들은 약 두달 간 실사를 진행한 뒤 9월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전망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자사주를 활용한 EB 발행이 불법은 아니지만 정부가 자사주 소각을 예고한 시점과 맞물린 만큼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며 "매각 당사자인 애경산업 측에서도 흥행은 달갑지만 정부 정책을 역행한 인수대금 논란은 부담스러울 수 있는 대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