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TRA, '일본 반도체 산업정책 동향과 시사점'日, 반도체 재도약 위해 향후 5년 91조 원 투자韓, 구조적 위기… 정책 지원 無·독자 생존 내몰려
  • ▲ 코트라 서울 본사 전경ⓒ코트라
    ▲ 코트라 서울 본사 전경ⓒ코트라
    한국이 반도체 산업을 경제안보 핵심 전략산업이자 ‘생존전략’으로 인식하고, 정책적 지원과 기업·산업 생태계의 전략적 연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던 일본이 산업 쇠퇴를 딛고 재도약을 위해 전방위적인 산업 재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경제안보 핵심 품목으로 재정의한 일본은 대규모 재정투자와 공급망 재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고도화 등을 통해 산업 경쟁력 회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민생지원 소비쿠폰에 12조8096억원 추경예산을 꾸린 우리나라와 대조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KOTRA(코트라)는 14일 발간하는 '일본 반도체 산업정책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반도체 산업 재도약 흐름을 분석하고, 한국이 취해야 할 정책적·산업적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자 ‘경제안보 핵심 품목’으로 재정의하고, △생산시설 유치 △핵심기술 개발 △공급망 강화 △인재 육성 등 다층적인 정책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1990년대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 반도체 산업은 버블 붕괴와 기술전환 지연 등으로 시장 점유율이 10% 미만으로 추락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2021년 이후 대규모 보조금을 통해 TSMC, 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고 키옥시아, 르네사스 등 자국 기업도 적극 지원하며 생산기반 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정부와 민간이 공동 출자한 ‘라피더스(Rapidus)’는 2027년까지 2nm 첨단 로직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IBM(미국), IMEC(벨기에) 등과 기술 협력을 진행 중이다.

    차세대 기술선점을 위한 재정지원도 적극적이다. 일본은 지난 2021~2023년 반도체 분야에 총 3.8조 엔(약 36조 원)을 투입했으며, 이시바 총리는 향후 5년간 반도체 및 AI 산업에 10조 엔(약 91조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히며 전폭적인 투자 의지를 드러냈다. 법인세 세액공제, 정책금융, 인프라 조성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강국으로서의 역량을 이용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이를 경제안보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정부펀드인 산업혁신투자기구(JIC)를 활용해 포토레지스트, FC-BGA 등 핵심 소재 기업을 인수하며 기술 유출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KOTRA는 일본의 사례를 토대로 한국도 반도체 산업을 ‘생존전략’으로 인식하고, 국적과 규모를 가리지 않는 실용적 생태계 조성과 기능 중심의 정책적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단기 세제 혜택을 넘어서는 실효성 있는 재정지원 체계 마련과 함께 정책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기술과 인재, 지식재산 축적을 활용할 수 있는 ‘페일세이프(Fail-Safe)’ 전략의 병행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기업 차원에서는 일본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 합작법인 설립, 인수합병(M&A) 등 단기간 협력 모델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 확보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는 지역 단위 클러스터 조성과 기능 중심의 균형 잡힌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한일 간 상호보완적 협력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강경성 KOTRA 사장은 “일본은 반도체 산업을 국가의 명운이 직결된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과감한 투자와 종합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한국도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과 기업의 전략적 협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