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산재 사고 지적하며 "주가 떨어지게 해야"납작 엎드린 포스코이앤씨 "명운 걸고 안전 지킬 것"기업들 패닉 "공포감 심각… 사업 경영 하지 말란 말인가"
  •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한 강력한 질타가 국내 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 대통령은 SPC, 포스코이앤씨 등을 겨냥, 기업의 안전 관리 소홀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특히 산업재해를 ESG 평가와 연동, 주가가 하락하도록 해야 한다는 등 새로운 제재 가능성을 언급해 기업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 예방대책과 관련해 국무위원들과 토론을 벌였다. 국무회의는 사전 예고 없이 생중계됐으며, 이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의 논의 장면은 1시간 넘게 가감 없이 공개됐다.

    이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산재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 제재 조항이 있느냐”고 질문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형사처벌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사고가 실제로 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 징역을 살릴 수도 없지 않나. (사업주 입장에서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사망사고가 상습적·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하는 것을 검토해봐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가해자의 악의적이거나 반사회적인 행위에 대해 실제 손해액을 넘어 추가적인 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를 말한다.

    특히 이 대통령은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중대한 사고가 나면 ESG(환경·사회·투명 경영)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하자 “아주 재미있는 것 같다. 산재 사망사고가 상습적으로 발생하면 여러 차례 공시해서 주가가 폭락하게 (만들 수도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오랜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 부활을 시작한 조선업계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조선업계는 최근 전 세계적인 선박 수주 호황으로 인해 도크(선박 건조장)가 풀가동 상태로, 폭염에 따른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온열질환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위험은 늘 상존하는 상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지나친 경영 간섭과 법적 제재는 노동 경쟁력을 저하하는 것은 물론 외부에 부정적 시그널을 전해 수주 경쟁력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며 “정부가 규제와 지원의 균형을 통해 기업 스스로 안전 관리와 기술 경쟁력 강화에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먼저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산업재해에 대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묻기 위한 법으로, 단순한 처벌을 넘어 사업주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강화를 목표로 한다.
  • ▲ 포스코이앤씨 송도 사옥. ⓒ포스코그룹
    ▲ 포스코이앤씨 송도 사옥. ⓒ포스코그룹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고 있는 산업계에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새로운 제재 적용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자체에 대한 과잉처벌 논란과 기업 경영 및 투자 위축 등 부작용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제재 도입 시 기업 경영 환경이 후퇴하고,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재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데, 저 역시 이 법이 그렇게 실효적인가 하는 의문이 있긴 하다. 대부분 집유 정도로 끝나는 데다가, 실제 이익은 회장이 보는데 책임은 사장이 지고 있지 않나”라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외 다른 제재 필요성을 강조해 기업들의 불안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이날 포스코이앤씨(E&C) 등 기업에서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데 대해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기업들이 노동자가) ‘죽어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참담하다”라고 했다.

    기업들은 산업재해 예방 필요성과 의무에 공감하면서도 이 대통령이 생방송 중계로 특정 기업을 노골적으로 질책하고, 추가 제재 가능성을 시사함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건설, 제조 등 노동 집약적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은 안전 관리 비용 증가와 규제 준수에 따른 경영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안전 관리 투자를 늘리려면 공사비가 상승하고, 이는 결국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토론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함에 따른 심리적 공포감과 강한 압박으로 기업들의 눈치 보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사건 사고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사례가 많은데, 이를 ESG 평가, 주가와 연계하는 등의 발상은 매우 위험해 보인다”며 “사실과 별개로 기업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고, 주식시장에서의 신뢰도 또한 직격탄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포스코이앤씨는 이 대통령의 비판 직후 신속히 대응에 나섰다. 담화문에는 올해 들어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 여러 차례 발생한 중대재해로 노동자들이 숨진 데 대해 사과하고 당국 조사에 적극 협조하며, 현장 안전관리를 더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대표이사는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함양~창녕간 고속도로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께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유가족분들께도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저희 회사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로 심려를 끼쳐드린 데 이어 또다시 인명사고가 발생해 참담한 심정과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또다시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체계의 전환을 이루어 내겠다"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고 거듭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