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 25% 줄여라" 칼 빼든 정부, 석화산업 뼈깎는 고통 시작됐다

정부가 석유화학산업의 글로벌 공급과잉 위기 극복을 위해 주요 기업들과 최대 370만톤(t)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감축하는 내용 등을 담은 사업재편 협약을 체결했다. 국내 전체 생산 설비에 견줬을 때 25% 정리해야 하는 숙제를 업게가 떠안게 된 것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해 "위기 극복의 해답은 과잉 설비 감축과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라며 사즉생의 각오로 석유화학 업계 구조 개편에 임하겠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는 주무부처 수장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해 관계부처 장·차관들이 참석했다.

구 부총리는 "위기 극복의 해답은 과잉 설비 감축과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이고,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며 "석유화학 업계가 뼈를 깎는 각오로 사업재편에 나서준다면 정부도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첫걸음을 뗀 것일 뿐 갈 길이 멀다"면서 "중국이나 중동 등 글로벌 공급 과잉이 예고됐음에도 국내 석화업계는 과거 호황에 취해 오히려 설비를 증설했고, 고부가 전환까지 실기하며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버티면 된다',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라는 안이한 인식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며 "기업과 대주주가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토대로, 구속력 있는 사업 재편 및 경쟁력 강화 계획을 빠르게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최대 370만t 규모의 NCC 설비 감축을 목표로 한 사업재편 협약을 체결하면서 "기업과 대주주가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토대로 구속력 있는 사업재편 및 경쟁력 강화 계획을 빠르게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약식에는 김상민 LG화학 석유화학부문 본부장, 이영준 롯데케미칼 사장, 남정운 한화솔루션 사장, 최안섭 SK지오센트릭 사장, 나상섭 한화토탈에너지스 대표, 류열 에쓰오일 사장, 허성우 GS칼텍스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는 이날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과잉 설비 감축 및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 등 구조개편 3대 방향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3개 석유화학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구조개편 동시 추진 ▲충분한 자구노력 및 타당성 있는 사업재편계획 마련 ▲정부의 종합지원 패키지 마련 등 정부지원 3대 원칙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석유화학 업계는 이날 사업재편 자율 협약식을 계기로 ▲270~370만톤 규모의 NCC 감축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의 전환 ▲지역경제 및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최소화 등에 나설 방침을 세웠다. 

산업부는 "이번 협약은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적 전환기를 맞아 산업계가 자율적으로 선제적 사업재편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그간의 버티기 전략에서 벗어나 구조개편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향후 업계에서 제출하는 사업재편계획에 대한 타당성 및 기업들의 자구노력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이에 필요한 금융, 세제, 연구개발(R&D), 규제완화 등 지원패키지를 마련해 뒷받침할 예정이다.

구 부총리는 "업계가 제출한 계획이 진정성 있다고 판단되면 규제완화, 금융, 세제 등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반면 사업재편을 미루거나 무임승차하려는 기업은 정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제시된 구조 개편안이 기업들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선(先) 자구책, 후(後) 정부 지원' 방침을 분명히 한 이상 이제 구체적인 정부 구조조정안은 기업이 제출하는 자구노력 여하에 달렸다. 

업계는 이날 정부의 발표를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국내 연간 납사 생산능력은 여수·울산·대산에 위치한 NCC 10곳을 합쳐 1470만톤 수준이다. 협약에 따른 감축 목표를 고려했을 때 연말까지 NCC의 25%를 정리해야 하는 숙제를 기업들이 떠안게 된 것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우리 석유화학 산업이 미래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개편만이 유일한 돌파구"라며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기업들도 사업재편에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21일 5대 시중은행과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불러 석화업계 금융지원 방향을 논의한다. 정부가 마련한 석유화학 구조개편 방안을 설명하고 채권금융기관에 지원 협조를 요청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