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저장장치 넘어 AI 학습·추론 전용 설계HBM 막힌 中, 알리바바·텐센트 수요 끌어안기'찻잔 속 태풍' 글로벌 빅테크 공급 가능성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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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웨이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정면 겨냥한 ‘AI 전용 SSD’를 선보인다. 단순 저장장치가 아니라 대형 AI 모델 학습과 추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돼 HBM의 용량·가격 한계를 직접 대체하겠다는 선언이다. 업계에서는 HBM 프리미엄을 누려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긴장할 만한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이날 오후 2시(현지시간) 상하이 롄추후 연구개발 센터에서 자체개발한 인공지능(AI) 전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를 공개할 예정이다. 

    해당 제품과 관련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업계와 외신에서는 개인용 컴퓨터에 사용한 단순 저장장치가 아닌, 대형 AI 모델 훈련과 추론을 수행하는 데이터센터용 SSD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SSD는 낸드플래시 기반의 데이터 저장장치를 말한다. 여기에 연산 기능을 일부 탑재해 HBM이 감당하지 못하는 대규모 저장, 전송을 가능하게 한 것이 핵심이다.

    화웨이는 기존에도 SSD나 eSSD를 출시, 공급해왔지만 ‘HBM 대체’를 직접 겨냥한 제품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로벌 AI 메모리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평가다. 미국의 수출규제로 중국향 HBM 공급이 막혀있는 상황에서 공급 부족을 해결하고 자국의 AI 생태계 독립성 확보를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미국의 수출규제로 HBM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중국 전용 AI칩(A800·H800·H20 등)을 공급하고는 있지만 글로벌 제품 대비 기술 수준이 낮아 학습 속도에 제약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초대형 모델 학습에서는 AI SSD와 같은 고성능·고효율·대용량 저장장치 의존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HBM은 초고속 연산에 유리하지만 용량이 수십 기가바이트(GB) 수준에 불과하고, 가격도 SSD 대비 수십 배 비싸다. 반면 AI SSD는 테라바이트(TB)급까지 확장 가능해 대규모 모델 학습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수용할 수 있고, 비용 효율성도 높다. 최근에는 SSD 내부에 연산 기능을 결합해 데이터 전송 병목을 줄이는 기술까지 더해지며, HBM이 가진 용량과 비용의 한계를 메워주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 최근 마이크론, 솔리다임, 키옥시아 등도 잇따라 AI SSD 신제품을 선보이는 중이다. 

    화웨이는 미국의 수출규제가 본격화한 시점부터 AI칩 자급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어센드 910C’이 대표적이다. 현재 주력 제품인 어센드 910B와 차세대 910C의 대량 출하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하반기 920 모델의 양산을 계획 중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AI SSD를 통해 연산 과정의 HBM 의존도를 낮추고 두 제품을 묶어 자급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업계는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글로벌 AI 반도체 구도는 엔비디아 GPU와 이를 뒷받침하는 삼성·SK의 HBM이 주축을 이뤄왔다. 그러나 화웨이가 AI SSD를 내세워 빠르게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경우 중국을 중심으로 HBM 의존도가 낮아질 수 있어서다. 중국이 HBM 없는 생태계를 굳히면 향후 중국 내 성장 기회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아울러 AI 생태계에서 HBM은 고성능 GPU 학습의 필수제로 여겨지나, 중장기적으로 ‘HBM+SSD’ 혼합 생태계로 이동하면 수요가 줄어 프리미엄 지위가 약화할 수 있다. 실제 최근 HBM의 공급 부족·가격 상승 등에 따라 HBM을 대체하고자하는 움직임도 있는 상황이다. 

    일례로 샌디스크와 SK하이닉스는 HBM을 대체할 수 있는 낸드플래시 기반 ‘High Bandwidth Flash(HBF)’를 공동 표준화 중이며, 키옥시아도 5TB 규모 HBF 프로토타입을 공개하는 등 업계 전반에서 HBM 의존도를 낮출 대체 기술 찾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화웨이의 영향력이 제한적인 만큼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할 것이라는 시각도 공존한다. 화웨이 제품은 글로벌 표준에서 벗어난 자국 생태계 방어 성격이 강해 미국·유럽·일본 등 글로벌 빅테크가 채택할 가능성은 낮다는 점에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표준을 따른 SmartSSD, CXL SSD 등 AI 특화 SSD를 선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HBM은 지금까지 고성능 AI 반도체의 필수 부품으로 여겨져왔지만, SSD 기반 대체 기술이 확산되면 메모리 시장의 판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단기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장기적으로 HBM이 독점적으로 누려온 프리미엄이 흔들릴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