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의학회·산부인과학회 잇따라 성명"불가항력적 사고 … 분만 인력 붕괴 가속"민사 1심서 6억여 원 배상 판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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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과 의사가 분만 중 발생한 뇌성마비 사건으로 형사재판에 넘겨지자 의료계가 "불가피한 사고에 형사책임을 묻는다면 결국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11일 입장문을 통해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불가항력적 결과"라며 "이를 형사적으로 처벌한다면 의료 현장은 더욱 위축되고 필수의료 기반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의학회도 "뇌성마비는 발생 원인이 다양하고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며 "이를 의료인의 과실로 단정해 고의적 범죄와 동일선상에서 다루는 것은 사실상 분만 포기 선언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산모와 신생아를 지키는 필수 의료인력이 범죄자로 내몰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모체태아의학회도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이미 취약해진 분만 인프라가 더 붕괴하면 국내 모자 보건에 치명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문제의 사건은 2018년 12월 발생했다. 당시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 A씨는 분만 과정에서 저산소증으로 인해 신생아가 뇌성마비 진단을 받자 형사 고소를 당했다. 함께 분만을 진행한 당시 3년 차 전공의 B씨도 피소됐다. 신생아는 임신 중 검사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지만 출산 직후 전신 청색증을 보였고, 신생아중환자실 치료 끝에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사 소송에서도 의료진의 책임 일부가 인정됐다. 같은 병원의 다른 진료과 의사였던 산모는 A 교수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난 5월 법원은 의료진이 태아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며 원고 측에 6억50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의료계는 이번 형사 기소를 두고 "분만은 숭고하지만 본질적으로 위험성이 큰 행위"라며 "1천 명 중 2명꼴로 발생하는 뇌성마비 같은 결과는 최선의 주의에도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형사처벌 강화가 오히려 분만 기피를 부추겨 산모와 신생아 안전을 더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