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대미 투자펀드 성격·구조 등 두고 평행선 이어가 김정관 장관, 러트닉과 회담했지만 14일 빈손 귀국러트닉 서명 압박 … 李 대통 "이익 없는 협상엔 서명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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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현지에서 한미 관세협상 관련 후속 협의를 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만나 후속 무역 합의를 진행했으나 양국 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익이 되지 않는 협상에는 사인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미국 측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양국 협상이 당분간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제기된다.김 장관은 지난 11일 워싱턴D.C.로 입국한 뒤 곧바로 뉴욕으로 이동해 러트닉 장관과 일대일 후속 협상을 가졌다. 김 장관은 11일과 12일 연속으로 러트닉 장관과 만났지만 끝내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했다. 양국 협상이 성과 없이 마무리되면서 김 장관은 귀국길에 올라 14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러트닉 장관은 김 장관이 미국에 도착한 11일 CNBC에서 "우리는 이미 합의를 마쳤지만 (이재명 대통령 방미 당시) 서명은 하지 않았다"며 "대통령이 악수하는 것과 실제 펜으로 문서에 서명하는 일은 다르며, 일본은 이미 서명했다"며 우리 정부가 합의문에 서명해야 한다는 압박성 메세지를 던졌다.러트닉 장관은 일본의 5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금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송유관 건설 같은 인프라 확충 등 미국이 원하는 대로 쓰일 것이며, 일본이 낸 5500억달러를 회수할 때까지 수익을 50대 50으로 배분하되 이후에는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미·일 협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일본은 대미 투자금 5500억달러에 대해 미국이 투자처를 지정하면 45일 이내 투자를 집행하고 투자금 회수 후 발생하는 이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미국 측은 한국 역시 이와 동일한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된다.앞서 미국은 지난 7월 30일 양국이 큰 틀에서 무역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했지만 우리 정부가 약속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성격과 구조를 둘러싼 입장 차로 인해 최종 타결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측이 일본 측과의 협상과 마찬가지로 프로젝트 선정 등에 있어 주도권을 가지기를 원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조선업과 첨단산업분야에 각각 1500억·2000억달러 상당의 투자펀드를 조성하되 대부분 대출과 보증형태로 구성한다는 입장이다.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국 자금으로 미국이 국부펀드를 조성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제시한 3500억달러 투자 약속은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8.7%에 해당한다. 단순 비율로만 따지면 GDP 대비 13.7% 수준의 투자를 약정한 일본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다.문제는 한국의 달러 조달 능력이 일본 대비 크게 제약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체결돼 있지만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연간 외화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달러 규모가 연간 최대 300억달러에 그친다. 반면 일본의 7월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1조3044억달러로 한국(4113억달러)의 세 배를 웃돈다.전문가들은 한국이 무리하게 자금을 집행할 경우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재원을 확보하려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이 국내외에서 채권을 찍어 마련한 자금을 달러로 환전해야 해 자본비율의 급격한 하락 가능성도 우려된다.이에 향후 한·미간 협상의 세부조율을 매듭짓고 협정 문안에 서명하는 일은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이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무역협정 최종 서명에 대해 좋으면 사인해야 하는데, 이익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나"라며 미국 측 현재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미국 측이 한·미간 무역합의에 따라 7월31일 해당 품목 관세율을 15%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약속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자동차 관세 인하를 받아내 관세가 15% 낮아진 상황이어서 한국산 자동차 관세 인하가 계속 미뤄질 경우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미국은 민감한 농·축산물 분야에서도 한국에 비관세 장벽 해소를 재차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쌀·소고기 등 농·축산물 추가 개방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관세협상에서 '과채류 수입 위생 관련 협력 강화'를 약속한 바 있어 검역절차 개선 논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일각에선 최근 조지아주 구금 사태도 무역협상에 예기치 못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측이 한국 측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어서다.러트닉 장관은 지난 11일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차가 근로자들을 관광비자로 들여보낸 뒤 그 공장에서 근무하게 한 것은 문제"라며 "현대차 같은 큰 기업이라면 정식 비자를 받을 능력이 충분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김 장관도 러트닉과의 회동에서 관세 문제를 비롯해 이번 구금 사태 관련 비자 문제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상임위 전체 회의에서 관련 질의에 대해 "러트닉 장관에게 직접적으로 강하게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아울러 한미 무역협상 과정에서 안보 이슈 역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부담할 주한미군 주둔비용(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차원에서 거론되는 주한미군 감축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