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 구두 개입에도 달러 강세 지속 한미 관세 협상 고착 등 대외 변수 직격탄미 금리 인하 기대에도 원화 약세 흐름 "해외자본 유출 100억달러 증가시 원달러 15원↑"
  • ▲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연합뉴스
    ▲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연합뉴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고착되며 외환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환율은 장중 한 때 1440원을 돌파하며 지난 4월 이후 6개월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한미 관세협상 불확실성과 주요 통화 약세 현상 등이 맞물리며 원화 가치가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27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36.7원에 개장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23일 장중 1441.5원까지 상승하며 지난 4월 29일 이후 약 반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4일 시장의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400원을 뚫은 이후 상승 곡선을 그리며 1400원대에 고착됐다. 불과 하루 만인 25일 1410원을 돌파하더니 이달 들어서는 10일 1430원, 23일 1140원대까지 뛰어오르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3일 외환당국이 약 1년 반만에 구두개입에 나서면서 1420원대로 내려앉았지만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대외 불확실성으로 원달러 환율 상단을 열어놓는 모습이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교역 환경 변화, 연준의 금리 경로 수정, 대미 투자 협상의 최종 결과 등 불확실성 요인이 산재해 있어 당분간 환율 변동성은 확대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김두언 하나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원화 약세의 표면적 이유는 대미 투자로 인한 자금 이탈 우려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이 예정돼 있지만 대미 투자금과 관련한 지급 형태와 시기 등이 결정될지는 불확실하다"며 "대미 투자 관련 불확실성은 경감되겠지만 여파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지만 환율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외국인 순매수에 힘입어 27일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돌파했지만 원화 값은 좀처럼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다. 

    통상 코스피가 오르면 원화가 강세를 보여야 하나, 디커플링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면 원화 수요가 늘어 환율이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최근에는 이같은 연동이 뚜렷하게 약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최근 양적긴축 종료 가능성을 내비친 것도 원화에 호재로 꼽힌다. 더욱이 다음달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사실상 확실시 되면서 한미 금리차 축소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원화 강세로 이어질만한 재료가 쌓이고 있지만 정작 환율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같은 원화 약세는 대외 불확실성 확대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이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져있고 대미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3500억달러 투자 논의 역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어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의 주요 내용에 대한 양국 간 논의가 교착상태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투자 방식, 투자 금액, 시간표, 우리가 어떻게 손실을 공유하고 배당을 나눌지 이 모든 게 여전히 쟁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29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무역 관련 합의를 공식 발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화 약세에는 엔화 움직임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과 일본은 주력 수출 품목이 겹쳐 통화 가치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원·엔 동조 현상이 강하다. 최근 일본에서 확장 재정을 공언해온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취임으로 엔화가 약세를 보이자 원화도 동조하며 환율이 상승했다. 

    이에 당국대응도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는 최근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되자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나섰다. 외환당국이 시장에 경고 메세지를 내보내는 구두 개입에도 나섰지만 환율은 여전히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부는 대미 투자 펀드 협상에서 한미 간 입장차를 좁히고 오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시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등 미 당국자들도 대규모 선(先)투자 방식이 한국 외환시장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한미 양국이 통화스와프보다는 투자 구조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환율 변동성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 외 대미 투자에 따른 자본 유출 우려가 커졌다"며 "현재 정부는 3500억달러 중 2000억달러를 8년간 분할 투자하는 안을 고려 중인데, 연 250억달러는 한은총재가 외환시장 영향이 크지 않다고 언급한 150억~200억달러를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3년간 해외자본 유출이 100억달러 증가하면 원달러는 15원 가량 상승했다"며 "대미투자 협상이 타결되면 원화는 안정을 찾겠으나 1400원대를 크게 하회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