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회장, APEC서 글로벌 리더와 협력 모색美·中 자원전쟁 격화 … 고려아연 신사업 기회 확장안티모니에서 게르마늄까지 … 美 파트너십 확대한국의 대미·대아태 공급망 협상 주도기업 급부상
  •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울산 온산제련소를 방문해 게르마늄 공장 신설 준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고려아연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울산 온산제련소를 방문해 게르마늄 공장 신설 준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고려아연
    국가 자원안보의 핵심 기업으로 떠오른 고려아연이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맞서 미국, 일본, EU(유럽연합) 등 국가의 전략광물 공급망 협력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최윤범 회장이 글로벌 외교의 전면에 나서며 고려아연이 전략광물 협력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이날 오전 경주 예술의 전당 화랑홀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최대 경제포럼인 ‘2025 APEC CEO 서밋’에 참석했다. 최 회장은 아태지역 21개국 등에서 참석한 약 1700여명의 글로벌 기업인과 만나 기술 교류는 물론 투자 및 협력관계를 모색할 방침이다.

    최윤범 회장, 한미 리셉션에 초청 … '자원외교' 전면에

    최 회장은 이날 오후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한미 기업인들이 참석하는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양국 기업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경제 협력과 양국 우호를 다지기 위해 마련한 자리로, AI와 IT·조선·에너지·방산·소재 등 분야에서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미국과의 전략광물 협력관계를 더욱 굳건히 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국내 유일 전략광물 정제 역량을 보유 중이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로 글로벌 자원전쟁이 격화한 가운데 고려아연은 탈(脫)중국 자원 확보의 교두보 역할을 맡으며 한국형 자원외교의 대표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안티모니,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 희소금속을 생산한다. 디스플레이·터치스크린·태양광패널 제조에 활용되는 ‘금속 비타민’ 인듐의 경우 연간 글로벌 수요 약 1400톤 가운데 150톤(11%) 가량을 고려아연이 공급 중이다.

    원전·방위산업 등에 활용되는 비스무트 역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려아연이 생산 중으로, 연간 900~1000톤 규모로 국내외에 판매하고 있다. 태양전지, 열전소자, 축전기, 차량 부품 등에 널리 활용되는 텔루륨도 매년 100~200톤 생산하고 있다.
  •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지난해 9월 중국이 수출통제에 나서며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한 안티모니 또한 고려아연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안티모니는 군수품, 반도체, 적외선 장치, 납축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인다. 6월 볼티모어행 화물선에 안티모니 20톤을 선적하며 대미 수출을 본격화한 고려아연은 연내 100톤 이상, 내년에는 연간 240톤 이상으로 수출 물량을 늘릴 계획이다.

    게르마늄·갈륨 등 포트폴리오 확장 … 글로벌 위상 강화

    고려아연은 자원전쟁 속 성장 기회를 넓히고 있다. 울산 온산제련소에 약 1400억원을 투입해 신설하는 게르마늄 공장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게르마늄은 야간투시경, 열화상 카메라, 적외선 감지기 등 방위산업에 쓰이는 핵심소재다.

    고려아연의 게르마늄 공장 건설은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 기간 록히드마틴과 체결한 핵심광물 협력 업무협약(MOU)의 후속 조치로 이뤄졌다. 온산제련소의 게르마늄 공장은 2028년 상반기 가동이 목표로, 고순도 이산화게르마늄을 연간 약 10톤 생산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고려아연은 국내 유일의 게르마늄 생산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나아가 고려아연은 최근 557억원을 투자, 온산제련소에 갈륨 회수 공정도 신설하기로 했다. 갈륨은 반도체와 발광다이오드(LED), 고속 집적회로 등 주요 첨단산업에서 반드시 들어가는 핵심 소재다. 2028년 상반기 시운전을 거쳐 본격 상업 가동에 돌입하면 연간 약 15.5톤의 갈륨을 생산해 약 110억원의 이익을 거둘 전망이다.

    국내 전략광물 생산 거점인 온산제련소의 희소금속 회수율 향상과 친환경 제련공정 기술 개발에 투자를 확대하면서 자재·원료 재고관리 체계 고도화에도 나선 모양새다. 고려아연 경영진들도 온산제련소의 안정 가동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직접 관리 중으로, 국가 경제안보 인프라의 일환으로서 산업 현장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지난달 미국 전직 의원들로 구성된 포머 멤버스 오브 컨그레스(FMC) 대표단을 맞아 온산제련소의 공정과 혁신 기술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FMC 측은 한국 제조업과 전략광물 산업의 경쟁력을 확인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고려아연 역할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APEC을 계기로 고려아연이 전략광물 분야 ‘민간 외교 채널’이자 공급망 협력의 중추 기업으로의 위상을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국내 유일의 제련기술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자원안보 리더십이 향후 한국의 대미·대아태 공급망 협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여러 전략 광물로 협력 범위를 넓혀가면서 미국 내 전략적 파트너십도 더욱 확고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자원안보는 이제 정부만의 영역이 아니라 기업 외교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윤범 회장의 글로벌 행보는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