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마다 '코드 예산' 증액 논란 … 검증은 뒷전 "미래 투자보다 선심성 지출 우선" 지적 이어져 범여권 190석으로 국회 견제 기능 사실상 마비 전문가 "재정중독 탈피하고 선심성 예산 삭감해야""예산, 정치 논리 치우치면 국가경쟁력에 악영향"
  • ▲ 17일부터 내년도 예산안의 증·감액 심사에 돌입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조정소위원회.ⓒ연합뉴스
    ▲ 17일부터 내년도 예산안의 증·감액 심사에 돌입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조정소위원회.ⓒ연합뉴스
    이재명 정부의 728조원의 '슈퍼 예산안'이 예산 심사에 돌입한 가운데 '정권 코드 예산안' 논란으로 국회가 삐그덕대고 있다. 여당이 주도하는 국회 상임위원회들이 현 정부나 여당 기조에 부합하는 예산 항목을 잇따라 증액하면서 심사 과정 전반이 균형성과 견제 기능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상임위 예산 심의과정에서 이른바 '코드 예산' 논란을 촉발한 대표 사례로는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을 위한 예산이 대거 반영된 것이 지목된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가 처리한 예산 가운데는 민주노총 본관 사무실 임차보증금 전환 비용 55억원과 한국노총 중앙근로자복지센터 시설 보수·교체비 55억원이 포함됐다. 당초 이와 관련한 예산안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원안에는 없었던 '쪽지 예산'이다.

    여당 주도로 양대 노총 형평성을 감안해 55억원씩 증액을 수용한 것으로, 정부 예산서 양대 노총의 사무실 임차비와 시설 보수비용을 편성한 것은 2005년(민주노총), 2019년(한국노총) 이후 처음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원을 통해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임을 더 부여하는 것"이라며 지원 명분을 강조하고 나섰다. 국민의힘이 "코드 예산", "정권 교체에 대한 대가성 지원 사업"이라며 삭감을 주장했지만, 다수결에서 밀려 힘을 쓰지 못했다. 

    염명배 충남대 명예교수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예산들은 사실상 다 정치적 예산으로, 표만 의식하다 보니 정책 방향이 왜곡되고 결국 그 부담은 국민들이 고스란히 지게 될 것"이라며 "야당이 수적 열세에 놓여 견제할 힘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국민들도 당장 손에 돈이 들어온다고 반길 일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칙 없는 예산안 논란도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시절 윤석열 정부 핵심기관들의 특활비를 '불필요한 쌈짓돈'이라며 전액 삭감했다. 

    그런데 정권이 교체되자 돌변했다. 정부는 내년도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예산안 특활비로 82억5100만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해 민주당 주도로 예산심의서 삭감됐던 검찰·경찰·감사원·기획재정부 등의 특활비도 예년 수준으로 복원했다. 

    학술연구를 명목으로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던 광복회에는 선양 행사 지원비가 8억원 편성됐는데 올해 예산 4800만원과 비교하면 무려 1666.7% 급증한 것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지속 가능성을 위배하는 총체적 부실의 예산안으로, 재정중독에서 탈피하고 선심성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며 "예산 심의는 총량관리와 재정건전성, 과제 타당성 점검, 지출구조조정, 재정의 성장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이재명표'로 분류되는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성과가 검증되지 않고도 증액된 사업도 부지기수다. 경기지사 시절부터 역점적으로 밀어붙여온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도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급격히 덩치를 키웠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위원회에서 1703억원에서 3409억원으로 두 배 넘게 불어난 것이다. 시범사업 대상지역을 최대 5곳까지 추가하고 국고 보조율을 40%에서 50%로 상향해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이재명 정부의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국립대 육성 사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올해 예산의 두 배 가까운 규모를 정부안에 편성했는데도 국회 교육위원회 심사 과정서 800억원이 추가 증액됐다. 

    정책의 실질적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당이 앞장서 예산을 급격히 불려놓으면서 정치적 구호가 재정 배분을 좌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현 정권표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 이재명표 사업인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이 포함된 '민생회복 및 사회연대경제 예산'은 올해보다 49% 증액된 26조2000억원이 편성됐다. 이 대통령이 국회 예산 시정연설에서 28번이나 언급하며 육성의지를 강조한 인공지능(AI) 예산의 2.5배 넘는 수준이다. 이를 두고 미래 투자보다 선심성 돈풀기 예산을 우선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른다. 

    예산 심의 주도권을 거대 여당이 움켜쥐면서 견제 장치도 사실상 힘을 잃었다. 범여권 의석이 190석에 이르는 상황에서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구도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의석수 열세에 갇힌 국민의힘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예산은 국가의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인데, 정치적 성향이나 단기적 정책 선호에 따라 편중되면 재정 효율성이 떨어지고 중장기적 국가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산 심사는 본질적으로 '정부 편성'과 '국회의 감시·수정'이라는 이중 구조를 통해 균형을 맞추도록 설계돼 있다"며 "특정 정당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면 견제 기능이 약화되고 그 결과 예산이 정책 효과나 필요성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결정될 위험이 커진다"고 우려했다.